[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극장, 이곳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시사회를 마친 후 영화를 연출한 최승호 감독의 이야기다. 그는 1986년 MBC에 입사해 ‘PD수첩’ 등을 연출하며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 등을 보도했고, 현재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활동하고 있다. PD 저널리즘을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그에게는 감독보다 PD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그의 감독 데뷔작 ‘자백’은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다.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유우성 씨가 간첩으로 내몰린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이 영화의 큰 줄기다. 국정원이 유 씨가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결정적 증거는 동생 유가려 씨의 자백, 하지만 이는 폭력과 회유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유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영화는 한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국정원 합동신문센터(한국에 들어온 탈북자가 간첩인지를 조사하는 곳)에서 2011년 자살한 한종수(한준식) 씨 사건, 1970년대 학원가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재일동포 김승효 씨의 이야기 등을 따라가면서 국정원 공작의 과거와 현재를 담는다. 무려 40개월 동안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을 넘나드는 끈질긴 추적 끝에 간첩 조작 사건의 실체를 드러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등장한다.
인터넷 독립언론이자 탐사보도전문매체인 뉴스타파가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괄했다. 최 감독은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 등에서 취재할 때는 위험을 많이 느꼈지만,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뉴스타파에 있기 때문에 내부적인 취재 방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는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뉴스타파라는 매체를 통해 방송을 하면 SNS, 유튜브 등의 공간에서 알려져 어느 정도 성과를 얻긴 했지만, 그래서 ‘국정원이 변화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게 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영방송 PD로 있으면 훨씬 더 많은 국민에게 한 번에 알릴 수 있었겠지만 그 다음으로 영화가 저널리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통해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가 국정원이라는 ‘성역’을 건드리는 탓에 멀티플렉스 철옹성을 뚫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자백’은 지난 6월 극장 개봉을 위해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다음 스토리펀딩을 열어 단일 프로그램 사상 최고 금액인 4억3500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최 감독은 “멀티플렉스 입장에서는 피해가고 싶은 영화일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며 “간접적으로 접촉해본 결과 현재까지 그리 신통한 반응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원인들과 뉴스타파 회원까지 5만여 명에게 우선 시사회를 진행해야 하는데 대관이 필요한 상황이라 이번 주말 공식적으로 대관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백’은 10월 개봉 예정이다.
‘자백’의 배급사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는 “우선 전국적으로 250개의 상영관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라면서 “그래야 최소한 관객들의 수요를 수용할 수 있을 테지만 사실 쉽지만은 않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극장 개봉한 또 하나의 독립 다큐멘터리인 ‘그림자들의 섬’(감독 김정근)은 5일까지 1962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개봉 첫날 상영관 수는 단 15개. 현재는 9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림자들의 섬’은 ‘그림자의 섬’이라는 뜻의 부산 영도(影島)에 위치한 한진중공업의 30년 노동조합 활동을 그린다. 2010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상황에서 ‘희망버스’로 연대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2014년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독립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의미 있는 소재를 다뤘다고 하더라도 상업영화 가운데 독립영화,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상영관 확보나 흥행 면에서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점점 재개봉 영화 편수는 늘어나고 있고, 이미 흥행한 영화의 확장판 개봉도 늘어나서 확보 가능한 상영관들을 줄이는 결과가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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