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쓰던 화장품이 다 떨어져 오랜만에 LA 내 한 마트의 화장품 코너를 찾았다. 매대 앞에 가보니 사람들이 제품을 집어 들고 성분표를 읽은 뒤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몇 분 동안 화면을 넘기던 한 아주머니가 마침내 제품 하나를 카트에 담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무엇을 보고 그 제품을 선택했을까?

몇 년 전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낯선 제품 하나가 입소문을 탔다. 바로 달팽이 점액 성분을 활용한 한국 화장품이었다. 처음 들으면 거부감이 앞설 수 있던 이 제품은 틱톡과 아마존 리뷰, 피부과 전문의들의 추천을 거쳐 미국 소비자들의 화장대 위에 올라갔다. 소비자들은 달팽이를 좋아해서 산 것이 아니다. 피부 보습과 진정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보고 산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얼굴에 붙이면 투명해지는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은 시간이 지나며 마스크가 투명하게 변하는 모습이 SNS에서 화제가 됐고, 미국인들에게 식재료로만 익숙한 쌀, 연어 추출물로 만든 화장품들도 효과가 입증되자 미국 소비자들의 스킨케어 루틴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통점은 하나다. 이들 기업은 ‘K뷰티’라는 이름에 기대기보다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꾸준히 반영하며 사용감과 성분, 제품 경쟁력으로 승부했다.

물론 한류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K팝과 K드라마는 미국 소비자가 한국 제품을 처음 알게 되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을 여는 것과 방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첫 구매는 호기심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재구매는 제품력이 만든다. 최근 K뷰티가 미국에서 강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틱톡의 사용 후기, 인플루언서의 추천, 할리우드 스타의 뷰티 루틴 공개가 한국 화장품을 낯선 외국 제품이 아니라 써볼 만한 좋은 제품으로 바꾸고 있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4년 미국의 한국 화장품 수입액은 약 17억달러로 전년 대비 54% 증가했고,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 최대 화장품 수입국이 됐다. 화장품의 본고장으로 여겨지던 프랑스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 소비자들이 한국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선택지 중 만족할 만한 제품으로 한국 화장품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미국 소비자는 냉정하다. 유명하다고 계속 사지 않고 낯설다고 무조건 외면하지도 않는다. 리뷰가 좋고, 가격이 합리적이며, 실제 경험이 만족스러우면 새로운 브랜드라도 받아들인다. 반대로 기대에 못 미치면 그 제품은 한 번의 유행으로 끝나게 된다.

상담회에 참가한 미국 바이어는 “이제 미국 소비자들도 어떤 성분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잘 안다”며 “우리가 찾는 것은 무수히 많은 경쟁 제품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독창적인 제품, 효능이 입증된 제품, 그리고 그것들이 패키징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제품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은 결국 좋은 제품이다.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한국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자가 다시 찾는 브랜드다.

태지현 코트라 로스앤젤레스 무역관 차장


eyr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