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들은 어떻게 세대공감 아이콘이 됐나
전연령대 아우른 tvN ‘꽃보다 할배’ 낯선듯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 젊은층도 부담없이 수용
‘할류’·실버세대 관광열풍 주도 케이블 채널 킬러 콘텐츠로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 가능
“함께 여행을 하다보면 사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백일섭 선생님이 발로 찼던 ‘장조림 사건’ 처럼요.(웃음) 하지만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그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 ‘꼰대’로 보이는 것과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종이 한 장 차이에요. 배낭여행이 어르신들이 그 같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 ‘자기만의 사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됐던 거죠.”( ‘꽃보다 할배’ 나영석 PD)
나이듦은 서글프다. 반짝거리던 인생의 기억은 잊은 채 젊음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산다. 인생의 중심에서 조금씩 빗겨날 때, 젊은이들의 불편한 시선도 받는다.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고 도무지 공감의 틈이 없어보일 때, ‘평균나이 76세’ 네 명의 노배우가 배낭여행을 떠났다.
첫회 최고시청률 5.4%(닐슨 코리아ㆍ유료방송 가입가구 기준)를 시작으로 유럽, 대만,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를 아루른 ‘세대공감’ 예능 ‘꽃보다 할배(tvN)’는 지난 한 해 명실상부 케이블 채널의 킬러 콘텐츠였다. 국내에서만 국한한 인기도 아니었다. 방송 중반 대만ㆍ홍콩으로 수출되며 ‘할류’ 열풍의 선봉에도 섰고, 실버세대의 관광열풍도 불러왔다. 중국에선 나영석PD가 플라잉 디렉터로 활약할 ‘중국판 꽃할배’를 준비 중이다.
가부장적이었고, 자상했지만 멀게 느껴졌던, 그리고 근엄한 회장님의 얼굴이었던 노배우들이 인생의 황혼에서 배낭여행을 떠난 자리에선, 드라마 속 고정된 이미지는 사라지고 낯선 모습들이 하나씩 발견됐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직진 본능’ 이순재, 살뜰하게 동생들을 챙기는 자상한 구야형(신구), 로맨틱한 아내바보 박근형, 유럽까지 가서도 의자를 찾는 떼쟁이 막내 백일섭의 모습에선 엄숙한 권위주의는 무게를 덜어낸 모습이었다. 기성세대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자 어린 세대가 먼저 반응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꽃보다 할배’에선 어른들에 대한 예우가 저변에 바탕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봐왔던 권위적인 틀은 완전히 사라진 모습이었다”며 “완고했던 드라마 속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엔 키치적인 요소도 숨어있다”고 말했다.
관찰 카메라 안에 놓여 통제된 생활을 하면서도 속옷 차림으로 숙소를 활보하는 할배들, 고스톱 한 판에 애가 닳고, ‘약’이라 칭하는 소주 없이는 오늘밤이 서운해하는 모습, 거기다 10대들의 패션아이템일 것 같은 초록색 백팩을 둘러맨 모습에 ‘키치(kitsch)’ 의 속성이 담겼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그러면서 “할배들의 모습이 예능 안에서 귀여운 캐릭터로 설명되자, 젊은 세대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여행을 통해 감상하고 향유하는 모습에선 신구세대 간의 취향, 정서의 이질감이 줄었다”고 말했다.
‘꽃보다 할배’를 통해 실험에 성공한 ‘실버 콘텐츠’는 이제 더 과감해졌다. 리얼 버라이어티 안에 담겼던 할배와 40대 짐꾼 이서진의 일탈은, 허구의 세계에서 다시 그려졌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지난 10일 시작한 ‘꽃할배 수사대’가 그것. 이 드라마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스핀오프 드라마다.
할배들의 무대가 드라마로 옮겨가자, 엄숙주의는 완전히 무너졌다. ‘꽃할배 수사대’는 하루 아침에 70대 노인으로 변한 젊은 형사들(이순재, 변희봉, 장광)이 20대 엘리트 경찰(김희철)과 함께 원래의 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기발한 스토리로 전개되는 드라마로, 판타지와 결합한 실버 콘텐츠다.
드라마에서 이순재는 ‘노인공경’이라곤 모르는 20대였지만, 막상 몸이 뒤바뀌며 ‘노인의 입장’이 되니 가족의 소중함과 노년의 불편함을 새삼 느낀게 된다. 장광은 핑크빛 키티 인형이 도배된 방에 사는 아이돌그룹 광팬이다. 인형을 끌어안고 방귀를 뀌면서도 “너는 듣지마”라며 키티인형의 귀를 막는다. 돌연 은어를 사용하고, 클럽에서 한바탕 리듬을 타는 모습도 근엄했던 노배우의 얼굴과는 낯선 것들이다.
구기원 CJ E&M PD는 “이 드라마를 통해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나이듦과 젊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노년층이 중심에 선 대표 실버 콘텐츠인 ‘꽃할배’는 그 자체의 브랜드를 이어 다양한 형태의 세대공감 콘텐츠로 발전시킬 만한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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