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 불법태업 3개월만 극단 선택

유서에 조합원들 실명…“버틸 수 없어”

형사 징역형 집행유예~벌금형 확정

민사 “가해자 11명, 유족에 공동으로 2.3억 배상”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 씨가 남긴 유서.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 씨가 남긴 유서.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고(故) 이영훈 씨는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을 운영했다. 15년 간 택배기사로 일한 돈을 조금씩 모아 차렸다. 그런 이씨가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의 실명을 유서에 적고 사망했다.

이씨는 유서를 통해 “노조원들의 불법 태업을 처음 경험했다”며 “태업을 끝내도 ‘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통보에 하루하루 지옥 같다”고 적었다. 이어 “너희(노조원)로 인해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집단 괴롭힘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지난 2021년 8월, ‘김포 택배 대리점주 사망 사건’의 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태업 돌입…점주 사망에도 허위사실 유포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씨의 분향소.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씨의 분향소.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해당 대리점 택배기사는 17명이었다. 이 중 12명은 지난 2021년 5월, 노동조합 ‘김포지회’를 만들고 태업에 돌입했다. “배송비 책정이 잘못됐다”며 생수처럼 크거나 무거운 물건의 배달을 거부했다. 기계로 택배 상자의 무게를 재고 배송비를 수정할 수 있었지만 노조원들은 그러지 않았다.

하루 평균 200개 물건이 쌓였다. 노조원들이 배송 거부한 택배는 이씨와 그의 가족이 떠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배송이 안 이뤄지면 CJ대한통운에 위약금을 내거나 배송 구역을 박탈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송은 새벽 1~2시께 끝났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3~4m 높이로 짐이 쌓였다.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 씨가 일했던 택배 대리지점. 노조원들이 태업을 강행하며 매일 물건이 쌓여있었다.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 씨가 일했던 택배 대리지점. 노조원들이 태업을 강행하며 매일 물건이 쌓여있었다.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이씨는 휴일, 주말, 밤낮 없이 일했다. 태업 한 달 만에 과로로 입원했다. 노조원들은 조롱했다. 이들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선 “나이롱(가짜) 아니냐”, “휠체어 안 타냐”는 조롱과 함께 욕설이 난무했다. 한 노조원은 “더 힘내서 대리점 먹어보자”고 말했다.

60회. 불과 3개월간 한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60회 발생했다. 견디지 못한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도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2차 가해가 이어졌다. 이들은 이씨가 택배기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수수료·물건을 빼돌린 적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씨가 월 5000만원을 버는 비리 소장이었다”는 거짓 사실을 유포했다. “이씨가 빚이 많았다”는 등 이씨 사망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했다.

지난 2021년 9월, 경기 김포 CJ대한통운 김포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대리점주 고(故) 이영훈 씨의 분향소. 인근 도로변에 전국 택배대리점 점주들이 보낸 근조화환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연합]
지난 2021년 9월, 경기 김포 CJ대한통운 김포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대리점주 고(故) 이영훈 씨의 분향소. 인근 도로변에 전국 택배대리점 점주들이 보낸 근조화환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연합]

택배노조, 대리점·노조 갈등 부각 경계

이씨가 숨진 뒤 유족의 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씨의 아내는 기존 배달구역을 정리하고 대리점을 새로 열었다. 살던 아파트는 팔았다. 전셋집을 얻어 이사했다. 세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다.

유족과 동료 대리점주들은 이씨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었다. 지난 2022년 8월, 1주기 추모식에서 택배기사 자녀 23명에게 ‘이영훈 장학금’이 전달됐다. 유족과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씨의 유족과 동료들은 그의 이름을 딴 ‘이영훈 장학금’을 만들었다.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지난 2021년 8월, 택배노조 조합원 12명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사망한 고(故) 이영훈씨의 유족과 동료들은 그의 이름을 딴 ‘이영훈 장학금’을 만들었다. [유튜브채널 채널A News]

당시 택배노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노조는 2021년 9월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건이 대리점과 노조의 갈등으로 부각되는 점을 경계했다. 노조는 “지금처럼 을과 병이 싸우도록 내버려두고 갑(택배사)의 문제를 방치하면 택배현장의 안정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형사사건에서 이미 유죄 확정…징역형의 집행유예~벌금형

노조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40대 경기 김포의 CJ대한통운 대리점주의 아내(가운데)와 법률 대리인들이 지난 2021년 9월, 경기 김포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유족은 가해자들을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고소했다. [연합]
노조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40대 경기 김포의 CJ대한통운 대리점주의 아내(가운데)와 법률 대리인들이 지난 2021년 9월, 경기 김포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유족은 가해자들을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고소했다. [연합]

형사사건에선 이미 가해자들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가담한 정도에 따라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 등이 선고됐다.

유족이 고소한 13명 중 명예훼손·업무방해·모욕 등을 주도한 2명은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다. 다른 1명은 정식 재판에서 모욕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됐다. 나머지 이들도 대부분 벌금형의 약식명령이 확정됐다.

법원 “가해자 11명, 공동으로 2.3억 배상”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최근 이 사건의 민사사건 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의 유족이 가해자 13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유족은 지난해 12월, “가해자 13명이 공동으로 약 9억원을 배상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가해자 11명이 약 2억 3000만원을 공동으로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 부천지원 민사1부(부장 조정민)는 지난달 12일 이같이 선고했다.

법원 [헤럴드경제DB]
법원 [헤럴드경제DB]

가해자들은 이미 유죄가 확정됐는데도 이번 재판 과정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자신들의 메시지 전송으로 망인(이씨)의 업무가 방해됐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명예훼손·모욕 표현은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에 불과하다”며 “공익적 목적”이라고 했다. 또한 “조합원 단체대화방에서 이뤄진 표현이므로 어떤 경위로 망인에게 전달됐는지 증명이 없다”며 “불법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민사사건 재판부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이뤄진 형사재판을 근거로 “가해자들이 업무방해, 모욕, 명예훼손 등 공동불법행위로 인해 망인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며 “망인은 유서에서 가해자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명시적으로 표시했고 이들의 실명을 기재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해자들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쟁의권을 정식으로 취득하기 전 개선 요청이라는 명목으로 수개월간 상당한 양의 택배배송을 거부하는 집단행동을 했다”며 “망인을 조롱하고 폄하하며 모욕하는 발언을 주고받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망인은 가해자들의 주장과 달리 택배기사들의 수수료를 횡령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며 “택배기사의 배송지역을 뺏어 다른 기사에게 주거나 회비를 횡령한 사실도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업무방해 대신 명예훼손·모욕만 저지르는 등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판단된 2명에 대해선 “표현의 내용과 횟수, 맥락을 고려했을 때 망인의 사망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유족과 가해자 측 쌍방 모두 항소하면서 2심이 열릴 예정이다.


notstr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