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선임기자 자치광장] 지방자치 부활 31년…서울시·자치구 수장들 공직자와 구민·시민 신뢰 얻어야

한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한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1995년 부활한 이후 올해로 31년째를 맞았다. 민선 9기도 출범 한 달을 맞았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시민들의 높아진 정치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였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가 시민의 뜻과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표로 단호하게 심판하겠다는 민심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처럼 성숙한 시민의식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민선 9기 출범 한 달을 맞은 지금 서울시장과 25개 자치구청장들이 가장 중요하게 새겨야 할 덕목은 바로 ‘무신불립’이다.

가정의 가장도 가족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공적 영역은 더욱 그렇다.

서울시장과 구청장이 공직자와 시민·구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시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광역행정을 담당한다. 자치구는 복지와 청소, 도로, 건축, 공원·녹지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행정을 수행한다.

특히 구청장은 구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만큼 언행과 처신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당선된 초선 구청장들이 취임 직후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부 직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구청장이 구민의 신뢰와 존경을 얻기는 쉽지 않다.

자치구마다 1000∼2000여명의 공무원이 구청장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직원들은 구청장의 말 한마디와 인사, 업무 지시를 통해 조직 운영의 방향과 리더십을 판단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침묵을 동의나 신뢰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인사권을 가진 구청장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쉽게 드러내기 어려울 뿐,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일이 반복되면 내부 불만은 결국 외부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쌓인 만큼 공무원들의 권리의식과 정치의식도 크게 높아졌다. 구청장은 직원들을 단순한 지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구정을 함께 책임지는 동반자로 존중해야 한다.

인사와 예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불필요한 의혹을 남기지 않고 오직 지역 발전과 주민 삶의 향상을 위해 봉사한다면 직원들도 기꺼이 힘을 보탤 것이다.

구청장과 직원들이 서로 신뢰하며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지역사회는 안정되고 행정 성과도 높아질 수 있다.

최근 사법제도와 정치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우리 사회의 혼란과 국민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 생활과 맞닿아 있는 지방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화려한 구호보다 약속을 지키고, 공정한 인사를 하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구민이 시민이고, 시민이 곧 국민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민선 9기 서울시장가 구청장들이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보여주기를 촉구한다.

민선 9기의 성공 여부는 결국 ‘무신불립’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seouldream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