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불가능’이라는 현실을 ‘가능’이라는 미래로 만들기 위해 흘린 땀방울과 눈물, 그리고 때로는 반목을 겪으면서도 끝내는 상생과 조화를 일궈낸 역사의 숫자다. 기적의 숫자다. 창립 58주년, 무분규 58년. 포스코의 얘기다.
하지만 58년 속에 오롯이 담긴 ‘기적의 기억’은 위태롭기만 하다. 계속해서 밀려 오는 도전의 파도는 또 한 번 기적을 시험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이 융단폭격을 가하는 와중에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과 미-이란 전쟁으로 인한 高관세·高유가·高환율·高금리 등 4중고는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영일만 기적의 산증인으로 남았던 포항의 지역경제는 최악의 경고음을 내고 있다.
포스코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포항·광양제철소 현장에서 조업을 지원하는 협력사 직원들에 대한 직접고용 로드맵 발표 이후 ‘무분규의 기적’은 거친 시험대에 올랐다. 산업현장의 고질적인 원·하청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격적인 결단이라는 의미는 정규직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색이 바랬다. 하청의 직영화 과정에서 복지혜택 축소를 우려한 정규직 노조는 포스코홀딩스의 사과 및 보상방안을 요구하며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의 행정지도 처분으로 쟁의권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그 불씨는 임금교섭으로 고스란히 옮겨갔을 뿐이다.
쟁의권 확보에 실패한 노조는 임금교섭에서 예전보다 독한 요구로 무분규의 전통을 시험하고 있다. 노조는 중노위 행정지도 결과가 나온 날 창사 이래 최초로 노사 상견례 전에 쟁위대책위원회를 출범하며 쟁의행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노사 상견례 이후에는 주 9~10회 수준의 집중교섭을 요구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조합원 대상 쟁위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 92%의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파업을 위한 숨가뿐 시계를 가동한 것은 57년 무분규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행동이다.
노조는 임금교섭에서 ▷기본급 7.1% 인상(평균 월 23만원, 연 700만원 수준) ▷격려금 600%(연 2000만원 수준) ▷우리사주 50주(현 시세 약 1500만원) ▷5년치 자연상승 적용(기본임금 12% 연봉 약 1100만원) ▷명절상여금 200%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N%’ 주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노조의 요구대로 따르면 총 1조4000억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포스코가 지난해 거둬들인 영업이익(1조7800억원)을 보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숫자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포스코의 월 평균 영업이익은 1484억원이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더 떨어졌다. 올 상반기 기준 포스코의 월 평균 영업이익은 약 810억원으로 작년보다 반토막이 났다. 영업이익 보다 많은 성과급으로 배보다 큰 배꼽이다.
세계은행(IBRD)은 58년 전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엄청난 외환비용에 비추어 경제성이 의심된다”며 노동·기술집약적인 기계공업을 우선하라고 권고했다. 한국경제평가보고서를 주도했던 IBRD 아시아지역 선임연구원이었던 자페(J. Jaffe)는 18년이 지난 1986년 당시 박태준 회장에게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포스코가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포스코의 기적은 노사가 함께 만들어낸 역사다.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한 철강업계가 58년전의 기적을 되살리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노사의 단합이 필요하다. 집안 싸움에 허리가 휘청이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빌리면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 길이다. 모두가 살기 위해선 대립이 아닌 화합과 상생으로 58년전의 기적을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영일만의 기적은 과거가 아닌 미래가 될 수 있다.
한석희 뉴스콘텐츠부문장겸 산업부장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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