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규모 동반성장 MOA 체결
인천시, “시금고 평가에는 반영 안 돼”
시점보다 중요한 것은 ‘연속성’
선정 이후 4년간 지역상생 지속 여부가 관건
하나금융, 시금고 선정 앞둔 7월부터 소상공인·기업·시니어 지원 잇따라
[헤럴드경제(인천)=이홍석 기자]연간 약 17조원 규모의 인천광역시 자금을 관리할 차기 시금고 선정을 앞두고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하나금융그룹이 시금고 선정 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 인천시와 35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금고 선정의 공정성과 지역상생 사업의 시점을 둘러싼 논란이 우려되고 있다.
인천시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4년간 운영할 차기 시금고 지정계획을 지난 6일 공고했다.
제1금고는 일반회계와 공기업 특별회계, 각종 기금 등을 관리하며 규모는 연간 약 15조원에 이른다. 제2금고는 기타 특별회계 등 약 2조원을 관리한다. 현재 제1금고는 2007년부터 신한은행이, 제2금고는 NH농협은행이 맡고 있다.
시는 오는 28일부터 9월 2일까지 신청서와 제안서를 접수한 뒤 9월 중 우선 지정 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번 경쟁은 사실상 20년간 제1금고를 운영해온 신한은행과 오는 9월 청라국제도시로 그룹 본사 이전을 앞둔 하나은행의 맞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동반성장 협약, 이해충돌 소지 있어
이런 상황에서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인천시와 35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 업무협약(MOA)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인천의 미래성장산업 육성을 위한 2000억원 규모의 인천 유니콘펀드 조성과 인천시·기술보증기금·하나은행이 함께하는 1500억원 규모 ABC+E 금융지원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청년과 취약계층,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지원,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청년 주거·취업 지원, 문화·체육 인프라 확충 등도 협약에 담겼다.
인천시는 이번 협약이 단순한 양해각서가 아니라 양측의 실제 이행 의무가 따르는 MOA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시금고 제안서 평가에는 이번 협약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협약의 내용보다 체결 시점이다. 차기 시금고 선정계획이 이미 공고됐고 오는 28일부터 제안서 접수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시금고 유력 후보인 하나금융과 인천시가 수천억원 규모의 대형 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7월부터 이어진 하나금융의 ‘인천 밀착’
이번 협약만 놓고 보면 단순한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선 행보까지 이어서 보면 하나금융의 인천지역 상생 행보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하나은행은 올해 인천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금융지원에 나섰고 지난 7월에는 인천신용보증재단에 올해 총 55억원을 특별출연해 84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특화 보증대출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100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과 인천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한 3000억원 규모의 특화산업대출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이호성 하나은행장이 직접 신포국제시장과 남동국가산업단지를 찾아 상인과 기업인들을 만나는 등 현장 행보도 이어갔다.
8월 들어서는 인천지역 시니어와 고령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나 행복드림(Dream) 버스’를 본격 가동했다.
금융전문가들이 경로당과 복지시설 등을 직접 찾아가 노후 자산관리, 상속·증여, 금융사기 예방교육 등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서해구와 부평구를 시작으로 계양구와 연수구, 옹진군 도서지역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12일에는 계양구에 폭염 취약계층을 위한 ‘행복나눔상자’ 50박스도 기탁했다. 하나금융은 이밖에도 크고 작은 지역 상생을 위한 지원 사업을 급속도로 눈에 띠게 벌이고 있다.
하나금융의 이 같은 행보가 모두 시금고 선정을 겨냥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금고 선정 절차가 본격화된 7월 이후 인천지역에 대한 대규모 금융지원과 현장 행보가 잇따르고 여기에 시금고 선정 직전 인천시와 3500억원 규모의 협약까지 체결됐다는 점에서 시점에 따른 오해와 공정성 논란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도 같은 잣대로 평가해야
이같은 잣대는 하나금융에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신한은행은 2007년부터 20년 동안 인천시 제1금고를 운영해왔다. 그동안 축적된 금고 운영 경험과 전산 시스템, 지역사회 기여 실적은 하나은행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신한은행 역시 인천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지원과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왔다.
따라서 이번 시금고 경쟁은 단순히 ‘최근 누가 더 많은 돈을 지원했느냐’의 경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한은행은 20년간의 지역사회 기여 실적을, 하나은행은 최근 상생금융과 청라 본사 이전에 따른 미래 지역경제 효과를 각각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시점’보다 ‘연속성’
이번 경쟁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시금고 선정 이전에 어떤 사업을 했느냐보다 선정 이후에도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번에 선정되는 시금고의 운영기간은 2027년부터 2030년까지 4년이다.
따라서 지역사회 기여를 평가한다면 공모 직전의 일회성 기부나 금융지원 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최근 3~5년간 지속적인 지역상생 실적 ▷실제 출연금과 단순 금융공급 규모의 구분 ▷지역경제에 미친 실질적인 효과 ▷향후 4년간의 지역상생 계획 ▷시금고 선정 이후 약속 이행 여부 등을 함께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하나금융과 인천시가 체결한 3500억원 협약이 하나은행의 시금고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그대로 이행되는지가 향후 논란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만약 하나은행이 시금고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동일한 규모와 조건으로 협약을 이행한다면 이번 협약의 지역상생 성격은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반대로 시금고 선정 여부에 따라 사업 규모나 지원 방식이 달라진다면 이번 협약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인천시도 ‘공정성 입증’ 책임 피하기 어려워
인천시는 이번 협약이 시금고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단순히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인천시는 ▷하나금융과 협약을 언제부터 논의했는지 ▷다른 금융기관에도 동일한 협력 기회를 제공했는지 ▷협약 내용이 시금고 제안서에 포함되는지 ▷평가위원들에게 협약 내용을 어떻게 처리하도록 안내했는지 ▷시금고 선정 결과와 관계없이 하나금융이 협약을 이행하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은행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금고 선정 과정 전체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검증 절차라는 것이다.
‘누가 더 많이 주느냐’보다 ‘누가 오래 함께하느냐’
결국 17조원 규모 인천시금고 경쟁에서 지역상생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러나 지역상생을 단순한 금액 경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금고를 따내기 위해 공모 직전에 대규모 지원사업을 제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금고에 선정된 뒤에도 4년 동안 인천시민과의 약속을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20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의 지역사회 기여와 향후 4년간의 계획을 제시해야 하고 하나은행은 청라 본사 이전과 최근 확대된 지역상생 사업이 시금고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 이번 시금고 경쟁의 진정한 승자는 시금고 선정 직전 가장 많은 지원을 약속한 은행이 아니라, 시금고를 맡은 이후에도 지역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 은행이어야 한다.
17조원에 달하는 시민의 곳간을 맡기는 만큼, 인천시 역시 특정 금융기관과의 협약 자체보다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협약의 지속성, 사후 이행 여부까지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gilber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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