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홍콩증시 상장…기업가치 2022년 고점 대비 74% 급감
美 의류 매출 지난해 4.5% 감소…초저가 사업모델 규제 직격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미국 패스트패션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며 한때 기업가치 1000억달러를 인정받았던 중국 태생 패션업체 쉬인이 돌고 돌아 홍콩증시에 입성한다. 다만 기업가치는 2022년 고점의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뉴욕과 런던 상장이 규제와 정치적 논란에 물거품이 되는 동안 기업 성장세까지 둔화하면서 시장의 평가가 크게 낮아졌다.
30일 홍콩거래소(HKEX)에 따르면 쉬인은 다음달 1일 홍콩증시 메인보드에 상장한다. IPO 공모가는 주당 48.56홍콩달러로 확정했다. 약 2억8000만주를 공모해 136억홍콩달러(약 17억3000만달러)를 조달하며, 이에 따른 기업가치는 약 265억달러다. 이는 2022년 비공개 투자 당시 평가받았던 약 1000억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며, 2023년 투자유치 당시 660억달러와 비교해도 절반 이하로 낮아진 수준이다.
쉬인의 몸값이 낮아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쉬인의 지난해 매출은 418억5000만달러로 전년보다 8% 늘었지만 순이익은 20억6000만달러로 38.7% 감소했다. 2024년 매출 증가율이 20.7%였던 것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이 90억달러 수준으로 1.1% 늘어나는 데 그쳤고 99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전환상환우선주 가치 변동에 따른 3억2800만달러의 회계상 평가손실이 반영된 영향이 컸다. 이를 제외하면 순손실 규모는 크게 줄어든다.
성장 둔화는 쉬인의 핵심 시장인 미국에서 먼저 나타났다.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쉬인의 미국 의류 매출은 전년보다 4.5% 감소했고 시장점유율도 1.8%에서 1.7%로 낮아졌다. 미국에서 쉬인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한 것은 2021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여전히 쉬인의 최대 시장이지만, 성장의 핵심축이었던 시장에서 매출과 점유율이 동시에 꺾인 것이다.
미국 시장의 부진이 커진 데에는 쉬인의 초저가 직구 모델을 겨냥한 규제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쉬인의 1분기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4.3% 감소했고 전체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연간 29.4%에서 올해 1분기 22.5%로 낮아졌다. 미국의 800달러 이하 소액 수입품 면세제도인 ‘디 미니미스(de minimis)’ 폐지가 중국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보내는 쉬인의 사업모델에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초저가를 유지하기도,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 구조가 됐다. 미국의 면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중국발 소액 배송에 관세가 붙자 쉬인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 가격을 올리면 자라와 H&M 등 전통 패스트패션 업체와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고, 가격을 유지하면 관세와 물류비 상승을 감당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저가 수입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부담이 커졌다. 쉬인은 올해 상반기 매출 증가율이 1분기와 비슷한 1%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면서, 유럽의 수입 비용과 가격 경쟁, 중동 수요 약화를 주요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성장 둔화와 별개로 쉬인의 상장이 늦어진 데에는 미·중 규제 갈등이라는 외부 요인도 있었다. 쉬인은 당초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중국 공급망과 노동 관행 등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과 규제당국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런던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중국 당국의 승인 지연과 공급망 관련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상장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은 뒤 홍콩을 택하면서 세 번째 상장 시도 끝에 증시에 입성하게 됐다.
이번 IPO가 단순한 자금조달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신규 조달 규모에 비해 기존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크기 때문이다. 쉬인은 이번 상장을 통해 약 17억달러를 조달하지만, 과거 후기 투자자들에게는 최대 35억달러를 현금과 추가 주식 형태로 지급할 예정이다. 과거 투자 당시보다 IPO 기업가치가 크게 낮아지면서 일정 가격 이하로 상장할 경우 투자자에게 보상하도록 한 우선주의 보호조항이 발동한 데 따른 것이다.
회사 자체의 자금 수요가 이번 IPO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쉬인은 약 150억달러의 현금 및 단기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IPO를 통해 새로 확보하는 자금이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라는 점에서, 기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회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상장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실제로 기존 주주들은 이번 IPO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다. 보위캐피털, 타이거글로벌, 제너럴애틀랜틱 등 기존 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코너스톤 투자자들은 약 3억8300만달러 규모의 쉬인 주식을 인수하기로 했다. 회사가 IPO 자금을 기술 역량과 글로벌 사업 확대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가운데, 공모를 통해 신규 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존 투자자들의 회수 경로도 열어주는 구조다.
시장에서도 쉬인의 낮아진 몸값에도 IPO 투자 매력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계 증권사 유스마트의 딕키 웡 리서치 총괄은 “성장이 이미 상당히 둔화했다”며 “현재 가격에서는 청약을 권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테무와 아마존 하울(Amazon Haul) 등과의 경쟁도 쉬인에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뉴욕대 법대 교수이자 중국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의 전 북미 대표인 윈스턴 마 교수는 “공모시장 투자자들은 더 이상 초고성장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며 “이제는 무역관세와 높아진 준법 비용, 미국과 중국 양국의 규제 감시 속에서 이익률을 방어해야 하는 성숙한 국경 간 플랫폼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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