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성공 뒤엔 순수예술의 힘이 있다”

AI 접목 확대…영상·음악 등 전공별 활용 기반 넓혀

“종합대학과 같은 잣대론 한계”…예술대 특성 반영한 지원 필요

학생 중심 교육 강화…진로·창업·융합예술까지 영역 확장

임상혁 추계예술대 총장이 지난 28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예술교육의 변화와 순수예술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정원 기자
임상혁 추계예술대 총장이 지난 28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예술교육의 변화와 순수예술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정원 기자

[헤럴드경제=양정원 기자] “K-팝도 클래식과 작곡이라는 바탕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영화와 콘텐츠 역시 순수미술, 문학, 음악이라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임상혁 추계예술대학교 총장은 지난 28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순수예술을 K-컬처의 뿌리로 규정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등교육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지만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초예술의 기반까지 약화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1974년 설립된 추계예술대는 음악, 미술, 문학, 영상콘텐츠 등 예술 분야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전체 재학생 가운데 음악 분야 비중이 약 60%에 달하며 소수정예 실기교육을 중심으로 전문 인재를 배출해왔다.

50년을 넘어선 대학이 마주한 현실은 과거와 다르다. 단순히 대학 진학 인구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악기와 미술 등을 오랜 기간 준비해 예술대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층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율은 현재 100%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시·정시 경쟁률은 과거 10대 1 수준에서 최근 7대 1 안팎으로 낮아졌다. 임 총장은 이를 일시적인 현상보다는 장기적인 예술 전공 지원자 감소의 흐름으로 보고 있다.

추계예술대가 대응책으로 내세운 것은 ‘융합’이다. 순수예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을 창작과 교육 과정에 적극 활용하는 방향이다.

임 총장은 “AI와의 접목은 반드시 해야 하며 학교가 하나의 정답을 정해 따라오게 하기보다 교수와 학생이 각자의 전공에 맞춰 기술을 활용하고 새로운 창작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영상콘텐츠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은 물론 시나리오와 무대 작업 등에 기술을 적용하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도 연습과 연주 과정에 AI를 활용해 자신의 연주를 비교·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학생들이 실제 창작 과정에서 관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AI 도구 구독료도 지원한다. AI를 별도의 기술 교육으로 분리하기보다 각 전공의 창작 과정에 자연스럽게 결합시키겠다는 취지다.

교수진 전체에 획일적인 활용법을 요구하기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학생들이 다양한 시도를 먼저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도 무게를 두고 있다. 전공의 특성을 살리면서 기술 활용의 폭을 넓히는 접근이다.

예술교육의 지향점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전문 연주자나 작가 등 소수의 성공 사례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졸업생들이 각자의 전공을 활용해 사회 안에서 지속 가능한 진로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피아노 전공만 해도 과거에는 유학, 대학원 진학, 개인교습, 학원 강사 등이 주요 진로로 인식됐다. 최근에는 창업, 콘텐츠 제작, 융합예술 등으로 선택지를 넓힐 수 있도록 비교과 프로그램과 대학혁신지원사업 등을 활용하고 있다.

임 총장이 AI와 예술의 융합을 비롯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한 예술교육의 변화, 학생들의 진로와 창작 역량을 넓히기 위한 교육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정원 기자
임 총장이 AI와 예술의 융합을 비롯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한 예술교육의 변화, 학생들의 진로와 창작 역량을 넓히기 위한 교육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정원 기자

“종합대학과 같은 잣대 안 돼”…예술대 특성 반영한 지원 필요

임 총장이 AI와 함께 강조한 것은 예술대학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비용 문제다.

음악과 미술은 대규모 강의보다 일대일 실기교육의 비중이 높다.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 연습실, 작업공간 등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설과 기자재도 필요하다. 학생 수가 적다고 해서 교육에 필요한 비용까지 비례해 줄어드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대학 평가와 정부 재정지원 과정에서는 이 같은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임 총장의 설명이다. 대규모 종합대학은 이공계와 공학 등 다양한 정부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있지만 학생 수가 1000명 안팎인 예술대학은 참여 가능한 사업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임 총장은 “예술대학을 단순히 수도권과 지방, 대규모와 소규모로 구분해 평가하기보다 각 대학이 담당하는 교육의 특성, 사회적 역할, 학생 한 명에게 투입되는 교육 여건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최근 추계예술대가 재정지원 일부 제한 대상에 포함된 배경에 대해서는 학교법인의 수익용 재산 보상금 지급 시점이 회계연도를 넘기면서 일시적인 자금 공백이 발생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현재 관련 자금은 확보된 상태라고 했다. 대학은 올해부터 인건비와 각종 경비 구조를 재점검하며 재정 운영 전반을 정비하고 있다. 2027학년도 신·편입생의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지원 제한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체 지원책도 마련 중이다.

임 총장이 바라보는 예술대학의 생존은 단순히 개별 대학의 존립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순수음악, 순수미술, 문학 등 기초예술이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의 창작 역량을 뒷받침하는 만큼 이 기반이 흔들리면 장기적으로 K-컬처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임 총장은 “학생들이 졸업한 뒤 추계예술대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제대로 대접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한 명의 스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학생이 예술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찾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고 했다.


7toy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