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수수료 20배 인상…경영·관리 비자 자본금 요건도 6배↑

“규정 바뀌기 전에 신청”…영주권 문의 급증도

관광객 급증·주택가격 논란에 ‘재팬 퍼스트’ 확산

일본 도쿄의 한 식당에서 미국인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있다. [AFP]
일본 도쿄의 한 식당에서 미국인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정갈한 환경과 미래적인 도심 풍경, 풍부한 미식 문화에 엔화 약세까지 더해지면서 일본은 최근 몇 년간 사상 최대 규모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취업이나 유학을 위해 일본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수도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가 잇달아 외국인 체류 규제를 강화하면서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겨온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이제 일본에 작별인사를 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CNN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엄격한 이민정책과 비교적 단일한 인구구성을 유지해온 나라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외국인 노동자에게 점차 문호을 개방했고, 해외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과잉관광 문제가 불거지고 일부 외국인 거주자가 현지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런 여론은 최근 ‘재팬 퍼스트’를 내세우는 정치 흐름에도 힘을 싣고 있다.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지난달 오는 10월부터 각종 비자 수수료를 인상한다고 밝혔다. 잇따른 외국인 규제 강화 조치 가운데 하나다.

새 규정에 따르면 영주권을 신청 수수료는 기존보다 20배 오른 20만엔(약 172만원)으로 인상된다. 히라구치 히로시 법무상은 수수료 인상의 취지에 대해 “외국인과 일본 국민이 함께 살아가는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재일 외국인들은 이번 조치가 신규 이주자에 대한 규제를 본격적으로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책 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이들은 일본에 가장 오래 머물 계획인 사람들, 즉 영주권 신청자들이다. 영주권을 신청하면 취업 활동 제한이 사실상 사라지고 출입국 횟수와 체류기간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오는 10월부터 영주권 신청자는 일본 평균 가구보다 높은 수준의 소득을 갖춰야 한다. 내년 4월부터는 향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금액이 30년치 지급액 수준이어야 하며, 중급 이상의 일본어 능력도 요구된다.

히라구치 법무상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영주자 자격이 가장 안정적인 체류 자격인 만큼, 신청자가 사회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독립 생계 요건과 국가 이익 관련 요건을 현실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도쿄 아사쿠사 지역의 인기 관광지인 센소지 거리에서 기모노를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AFP]
도쿄 아사쿠사 지역의 인기 관광지인 센소지 거리에서 기모노를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AFP]

일본 정부는 올해 초 외국인 사업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기업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경영·관리 비자 ’의 자본금 요건을 기존 500만엔(약 4300만원)에서 3000만엔(약 2억6000만원)으로 여섯 배 높였다.

지난해 일본의 외국인 거주자는 역대 최대인 41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4%를 차지했다. 국적별로는 중국인이 93만명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인도 약 7만명이 일본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규제 강화는 일부 외국인 거주자가 일본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공공 건강보험료 납부를 회피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 뒤 나왔다. 일본은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며, 모든 거주자가 매월 또는 매년 보험료를 내면 의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 장벽을 악용해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체류 자격을 얻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돼왔다. 급증한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과 물가 상승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유다 가즈키 터치이민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규정이 바뀌기 전에 영주권 신청을 서두르려는 문의가 최근 급증했다고 전했다. 그는 새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해, 앞으로 영주권 취득 자격을 갖추는 사람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엔화 약세도 일본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의 실질 가치도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비자 비용 인상과 제도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일본 정착을 다시 고민하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한 외국인 유학생은 엑스(X)에 “내가 갓 졸업했을 때라면 이런 수수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적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