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동을 뒤흔든 전쟁 위기는 UAE의 외교·경제 전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차질은 세계적인 무역·에너지 허브를 지향해 온 UAE에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 필자가 만난 UAE 정부 관계자들과 기업인들에게서 유독 자주 들은 말이 있다. “위기를 겪어보니 비로소 누가 진짜 친구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사막의 유목사회에서 신뢰는 곧 생존의 기준이다. 누군가를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신중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일단 형성된 신뢰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유목민적 정서와 철학은 오늘날 UAE의 외교 안목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수많은 국가와 다각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랜 시간 검증된 ‘진짜 파트너’를 각별히 우대한다. 이번 전쟁은 그 관계의 무게와 진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UAE의 대외 관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단연 눈에 띈다. 한국과 UAE는 2018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UAE는 한국이 이러한 관계를 맺은 소수 국가 중 하나이자 중동·아프리카 최초의 국가다. 지난해 UAE 국빈 방문에서 양국 정상은 양국 관계를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인 수준’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대통령궁 상공을 수놓은 태극 문양의 에어쇼와 기마·낙타 행렬은 한국을 향한 UAE의 각별한 존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신뢰는 정부 간 협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해외 국가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UAE 내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94.8%로 조사 대상 26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양국 국민 사이에 이미 커다란 신뢰 자산이 든든하게 축적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기 이후 UAE가 그리는 미래 구상에도 한국은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UAE는 본래 글로벌 자본과 기업이 모이는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실제로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은 483억달러로 사상 최대였고, 그린필드 투자 건수도 세계 2위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호르무즈 사태로 해외 공급망과 외국인 인력에 크게 의존하는 개방형 경제가 가지는 취약점이 낱낱이 드러났다.
이에 UAE는 단순히 세계의 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첨단 제조업과 방산, 식량안보, AI 및 통신, 핵심 인프라의 자립과 공급망 다변화가 그 중심에 있다.
한국은 이러한 UAE의 변화에 가장 잘 부합하는 파트너이다. 바라카 원전이 상징하는 양국의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완성품을 판매하는 관계를 넘어 공동개발과 현지생산, 기술이전과 인력 양성으로 협력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한국의 제조·기술 역량에 UAE의 자본과 시장, 중동 허브로서의 네트워크가 결합한다면 양국은 제3국 시장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전쟁은 UAE에 친구의 숫자보다 신뢰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웠다. 한국 역시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를 이제 산업과 기술의 협력으로 발전시킬 때다. 위기 속에서 단단해진 신뢰가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된다면, 한-UAE 관계는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현진 한국무역협회 UAE지부장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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