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협상에서 배우는 ‘판을 설계하는 법’

극단적 앵커링·예측 불가능성으로 협상력↑

“이기는 협상? 판을 유리한 구조로 설계해야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부 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부 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도발적이고 직설적이며, 상대를 위협하는 언사도 서슴지 않는 예측 불가의 승부사.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거의 모든 국제 협상과 이슈의 흐름을 좌우하는 키맨이기도 하다.

비즈니스 협상 전문가 김경의 저서 ‘판을 뒤집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은 “세계는 왜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을 파고들며, 그의 ‘이기는 기술’을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의 실전 지침서로 삼을 수 있도록 제시한다.

트럼프에게 협상 테이블은 모든 거래의 승패가 갈리는 전장이다. 상호 이익을 존중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윈-윈(Win-Win)’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트럼프가 테이블에 앉았다면 이제 그 관심은 오로지 ‘지배’와 ‘승리’뿐이다. 저자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 ‘착한 협상법’은 나만 손해 보는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협상할 때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아예 게임의 ‘판’ 자체를 새로 짠다. 극단적인 기준점(앵커·Anchor)으로 상대를 흔들고, 미리 협상의 선택 범위를 선제적으로 정함으로써 트럼프는 승패의 8할을 결정지은 상태로 테이블에 앉는다.

판을 뒤집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김경 지음/박영사
판을 뒤집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김경 지음/박영사

그의 극단적인 앵커링 전술을 잘 보여주는 일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이다. 2020년 1차 협상에서 트럼프 정부는 기존 분담금의 약 5배에 달하는 50억 달러라는 숫자를 던졌다. 우리 협상단이 10~20%를 예상할 때 아예 수용 불가능한 숫자를 던짐으로써 판의 기준점 자체를 옮겨버린 것이다.

그는 이어 상대의 약점을 레버리지(지렛대)로 삼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상시 불안하게 만들며, 심지어 필요하다면 언제든 판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 저자는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더 좋은 논리’가 아니라 ‘미련 없이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용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트럼프는 취임 직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를 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자간 협력의 당연한 일부가 아님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저자는 “트럼프는 ‘우리는 당신들이 없어도 잘 살지만, 당신들은 미국 시장 없이 힘들 것’이라는 불확실성을 무기로 삼았다”면서 “덕분에 이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미일 무역 협상 등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협상이 한 번의 대화가 아니라 준비와 실행, 그리고 정리가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임을 거듭 강조한다. 마냥 즉흥적이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트럼프의 행동이 알고 보면 일정한 패턴을 가지는 것처럼, 성공적인 협상을 위한 핵심은 협상 준비·협상 중 대응·협상 후 정리 등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유리한 구조의 판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협상은 대화가 아닌 흐름을, 조건이 아니라 구조를, 순간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의 판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판을 뒤집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김경 지음/박영사


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