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독일군의 암호기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1950년 그가 던진 질문이 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6년 뒤 미국 다트머스대에 젊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모였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가 흉내 낼 수 있을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이 모임을 주도한 젊은 수학자 존 매카시는 이 새로운 연구 분야에 AI(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AI가 세상에 이름을 얻은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기세가 좋았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곧 등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계속된 실패로 긴 ‘AI의 겨울’이 찾아왔다.
그러나 AI의 긴 겨울에도 봄이 올 것을 믿고 묵묵히 버틴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캐나다 토론토대의 제프리 힌턴이었다. 그는 인간 뇌의 신경망을 본뜬 인공신경망을 통해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만 그 생각이 현실이 되려면 알고리즘과 하드웨어의 진화, 충분한 디지털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했다.
마침내 2012년 그 순간이 왔다. 힌턴과 두 제자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일리야 수츠케버는 대규모 이미지 데이터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이용해 ‘알렉스넷’을 만들었다. 100만장이 넘는 이미지를 학습한 알렉스넷은 사진 속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에서 기존 기술을 압도했다. 기계가 인간의 눈처럼 사물을 보고 구별하는 능력에 성큼 다가선 순간이었다.
5년 뒤인 2017년 구글 연구원 8명이 ‘Attention Is All You Need’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등장한 ‘트랜스포머’ 구조는 오늘날 생성형 AI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리고 5년 뒤인 2022년 11월 챗GPT가 세상에 공개됐다.
1950년 튜링의 질문에서 챗GPT까지 72년. 긴 겨울을 견디고 고희를 넘긴 AI가 이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AI는 이제 묻는 말에 답하는 생성형 AI 시대를 지나, 원하는 것을 말하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사용해 일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AI’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AGI가 2030년대에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금 두려워진다. 인간은 무엇으로 AI와 경쟁해야 할까. 앞으로 인간이 ‘앎’의 양으로 AI와 겨루겠다는 것은 승산 없는 게임인지도 모른다.
흔히 “아는 사람 위에 해본 사람 있다”고 한다. AI에게는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 본 경험도,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용서해 본 경험도 없다. 무엇보다 정답 없는 순간에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해 본 경험도 없다. AI는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계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을 살아내 본 적은 없다. 인간에게는 선택하고, 부딪치고, 책임지며 쌓아온 삶의 내공이 있다.
AI의 70여년 생존기를 들여다보면 AI도 수많은 실패와 긴 겨울을 견디며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도 과거의 실패에 매몰될 이유가 없다. 오늘도 도전하고, 부딪치고, 경험하며 ‘해본 사람’의 내공을 쌓아가자. 언제 세상을 지능만으로 살아왔던가. 똑똑한 AI 비서 하나 곁에 두고, 이 험난하고도 재미있는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 보자.
이영 제4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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