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물이 이렇게 콸콸 나오는데, 부족하다고?’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깨끗한 수돗물. 전국 어디에서도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게 바로 ‘깨끗한 물’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한때 ‘유엔(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고 일컬어진 바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에서도 이같은 표제를 활용해 물 절약을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해당 분류가 유엔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후 ‘물 부족 국가’라는 명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은 잘못된 얘기일까.
최근 뜻밖의 반전 평가가 나왔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모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을 명시적으로 ‘물 부족 국가’라고 지목한 것.
심지어 국민 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기후·환경업계에 따르면 OECD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한눈에 보는 환경: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을 회원국 가운데 1인당 재생가능 담수 자원량이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OECD는 해당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물 부족 국가(Korea is Water-poor)”라며 “1인당 취수량이 많은 데다, 중간에서 높은 수준의 물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 스트레스란 이용할 수 있는 수자원에 비해 얼마나 많은 물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수치가 높을수록 한정된 수자원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단 의미다.
실제 유엔이 공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한국의 물 스트레스 지수는 85.2%에 달했다.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에 비해 실제로 끌어다 사용하는 물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적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를 바탕으로 집계한 통계를 보면 지난 2022년 한국의 1인당 재생 가능 담수자원량은 연간 1255㎥로 나타났다.
단순 비교하면, 한국의 재생 가능 담수자원량은 일본의 약 36%, 미국의 약 1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재생 가능 담수자원이란 비가 내리고 지하수가 채워지는 등 자연적인 물순환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충되는 물을 말한다.
통상 ‘물 부족 국가’라고 하면,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 지대의 국가 등을 떠올린다. 실제 우리나라에는 비가 적게 내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 또한 세계 평균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이 넘쳐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유독 높은 데다, 비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특성이 있다. 이에 비가 많이 내리더라도 국민 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은 축에 속한다.
시민들은 이같은 ‘물 부족’을 잘 느끼지 못한다. 물을 공급하고 처리하는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 유엔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구는 전체 99%에 달한다.
쉽게 말해, 상대적으로 물이 충분하지 않지만 이를 공급하고 처리하는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일상생활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앞으로도 물 부족 현상을 경험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 패턴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
실제 단기간에 일부 지역에 많은 비가 퍼붓는 ‘국지성 집중호우’ 현상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이 잦아지며 일상이 흔들리는 사례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강원도 강릉에서 벌어진 ‘가뭄’ 사태. 강원도에 따르면 지난해 강릉의 4~8월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32.6%에 불과했다. 이에 강릉지역 생활용수 약 87%를 담당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1.5%까지 떨어져, 제한급수가 시행됐다.
피해는 가정에만 그친 게 아니었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점들은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 카페에서는 수돗물 대신 생수를 구입해 음료를 만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후변화로 인해 당연하게 사용하던 물이 부족해지자, 사람들의 생업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
올해도 관련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8월 경북 청도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생활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발생하면서 급수차까지 투입됐다. 포항과 경주에서는 부족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취수원을 변경하는 등 비상 대책을 마련했다.
가을에도 가뭄은 이어졌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발표한 ‘10월 가뭄 예·경보’에 따르면 10월 1일 기준 전국 97개 지역에서 기상가뭄이 발생했다. 최근 6개월간 전국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72.5% 수준에 그쳤다. 전국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도 48.3%로, 평년보다 크게 낮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 기상청의 장기 관측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과거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 줄어든 반면, 한 번 내릴 때 쏟아지는 비의 양은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실제 강릉에서도 수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다가, 이후 열흘 사이 많은 비가 집중되면서 저수율이 급격히 회복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앞으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 시기에 필요한 물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물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이 확대되면서 막대한 공업용수가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기도 용인에 조성되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두 곳에는 향후 하루 최대 133만7000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하루에 공급해야 하는 물의 양만 100만t을 훌쩍 넘어서는 셈.
미래 산업에 사용되는 물을 ‘낭비’라고 볼 수는 없다.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용수 공급은 필수다. 하지만 산업용수가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만큼의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뭄이 길어져 이용할 수 있는 물이 줄어든다면 생활용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산업용수까지 한정된 자원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 국가 차원에서 기후변화 등을 고려해 장기적인 물 수요와 공급 가능량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국제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이같은 지적이 나오고 있다. OECD는 지난 2018년 한국의 물·에너지·토지·식량 관리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산업화와 도시화, 기후변화로 국내 수자원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농업과 산업, 생활용수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물 수요를 함께 고려하고, 미래의 가뭄과 물 부족 위험에 대비한 장기적인 관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물이 부족할 때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
지금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오는 일상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한정된 수자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배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OECD는 “한국은 과거 발생했던 최악의 가뭄을 기준으로 수자원 계획을 수립해 왔지만, 과거의 기후 기록이 반드시 미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며 “높은 수준의 물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 늘어날 물 수요에 대응하고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물 사용 효율과 수자원 배분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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