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최순실은) 아무 직함도 없이 대통령의 배후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제2의 차지철이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사전입수 파문과 관련해 이같은 발언을 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 2인자로 꼽혔던 차지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차지철은 1957년 미국의 포트실 포병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1960년 귀국한 뒤 이듬해 대위로 진급하여 소장 박정희(朴正熙)가 주축이 된 5·16군사정변에 가담했다. 쿠데타 이후 박치옥 공수단장의 소개로 박정희의 경호장교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박정희의 신임을 얻고 정치에 입문했다. 1962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하여 민주공화당 상임위원을 지냈다. 이후 국회의원에 연임하면서 세를 넓혔다. 35세이던 1969년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의정사상 최연소 상임위원장이 될 정도로 박정희의 신임을 받았다.

1974년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사건으로 물러난 박종규의 후임으로 대통령 경호실장이 됐다.

그는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월권 행위로 대통령 비서실과 중앙정보부와의 마찰이 잦았고 재야와 야당문제에 대해 강경일변도로 대응했다. 학계에서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의원직 제명을 주도하고,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강경진압을 주장하고 공수단 투입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최고 권력이던 박정희를 사이에 놓고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와 대립하게 되면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될 때 경호실장으로 현장에 있다가 함께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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