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얘기입니다. 저의 용산공고 2년차 코치시절로, 이때 입학했던 백달근(74년 목포)이라는 복서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토목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요삼(73년 정읍)과 함께 신생팀인 용산공고의 ‘원투펀치’를 형성했습니다. 최요삼은 후에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선수죠. 그때 제 나이는 만 27세로 한마디로 혈기 왕성할 때였죠. 달근이는 과묵한 성격 탓에 묻는 말에 버킹컴 근위병처럼 단답형으로 답했던 조용한 성품의 복서였습니다. 별다른 접촉이 없던 이 친구가 얼마전 불쑥 제 체육관을 방문하면서 철의 장막, 크레믈린궁과 같은 침묵이 허물어졌습니다. 소통이 시작됐죠.문득 김춘수의 꽃이란 시 구절이 연상 됐죠(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후 3차례 더 제 체육관을 찾아 소줏잔을 기울이며 옛 이야기를 밤늦도록 나눴는데 정말이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용산공고 시절 저는 아이들에게 다정다감(多情多感)과는 거리가 먼 폭압적인 군주 같은 존재였고, 이왕 존경받지 못할 군주가 될 바엔 차라리 무자비한 군주가 되라는 마키아 벨리의 어록을 신봉(信奉)했던 전형적인 스파르타식 코치였죠.신입생 달근이는 그해 김명복배 8강에서 당시 ‘제2의 허영모’라 불리던, 전국선수권자인 김대준(당시 순천금당고 3학년)을 제압하며 파란을 일으켰고, 이어진 회장배 대회 8강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후에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된 신동길에게 악전고투(惡戰苦鬪끝)에 판정승을 거두고 메달권에 진입한 정교한 사우스포였죠.이듬해인 1991년에도 달근이는 회장배 대회에서도 플라이급으로 출전해 죽창(竹槍)처럼 쑤시는 카운터펀치로 3차례 KO승을 이끌어낸 것을 비롯해 파죽의 5연승을 거두고 우승과 함께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습니다. 큰 주목을 받으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됩니다.
특히 졸업반인 1992년에는 세계선수권 선발전에 페더급으로 출전해 황경섭을 꺽었고, 1990년 서울컵 최우수복서상을 수상한 후 기량이 일취월장한 원광대 박덕규와 맞붙어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14ㅡ14, 동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깝게 토탈에서 패했지만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죠. 박덕규는 호주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의 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했던 거물급 복서였습니다. 단지 징크스라면 유독 전국체전과는 인연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교 1학년 때는 코크급에서 최요삼의 벽에 막혀 전국체전 출전이 좌절됐고, 2학년 때는 밴텀급에서 당곡고 지인진에게, 3학년 때는 후에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리라공고 박정필에게 각각 2-3로 패하는 등 전국체전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초접전을 벌였던 지인진을 88프로모션으로 스카웃하는 과정에서 백달근이 일익을 담당합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려보면 때는 1991년 11월 초순경입니다. 당시 당곡고 체육교사인 신귀항 선배(1961년생 서천)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군산체육관 선배였죠. 사연은 졸업반인 지인진의 한체대 진학이 여러 가지 변수로 브레이크가 걸렸고, 이 참에 프로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하니 프로 물을 먹은 저한테 가교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더불어 이왕이면 넉넉하게 스카웃비 좀 받고 당시 가장 잘 나가는 88프로모션에 입단했으면 하는 속내도 내비쳤죠. 개인적으로 한체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신귀항 선생은 따뜻한 인품을 지닌 교육자였고, 선수들을 배려할 줄 아는 올곧은 교육자로 기억합니다.이후 직속상관인 김철호 관장에게 연락을 취하고 일단 D-데이를 잡아 평가전을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지인진의 평가전 상대는 그해 회장배 최우수복서인 백달근(이후 용인대로 진학)으로 낙점됐고, 저는 자투리 시간에 전후사정을 달근이에게 알아듣게 설명했습니다. 눈치 빠른 달근이는 제 속뜻을 알아들었죠. 결론은 ‘태업(怠業)’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적당히 알아서 맞아주면서 지인진의 몸값을 올리려는 임무를 담당하란 거였죠. 달근이는 그날 예상외로 훨씬 강도높은 맹공을 퍼붙는 지인진의 파상공격에 진땀을 흘립니다. 지인진은 독을 품고 결사항전의 태세로 평가전에 임했던 것이죠.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프로행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며 배수진을 친 지인진은 그 스파링에서 기관총 같은 연타와 유연한 몸놀림 등 보여줄 건 다 보여줍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88사단의 핵심인사(심영자 회장. 김기윤 사장. 김철호 관장)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저는 <몰래 카메라>를 진행하는 이경규처럼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요. 달근이가 기가 막히게 연기를 잘해 주기도 했지만 사실 지인진의 기량도 상당했습니다. 88프로모션의 핵심인사들은 지인진의 하이테크한 기량에 완전매료돼 그해 신인왕전 최우수선수카드를 벌써부터 만지작거리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최우수신인왕을 배출하면 방송사의 중계권카드 하나가 프로모션에 배정되는 엄청난 프리미엄이 있었습니다. 지인진은 당곡고 시절 임재환(대전체고)과 밴텀급에서 고교랭킹 1, 2위를 다툰 선수였습니다.
특히 지인진을 지도했던 이철승 관장(1963년생 익산)은 지인진을 자신의 숙소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친동생처럼 챙긴 헌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당곡고는 선수층이 얇았기에 지인진은 군계일학 같은 존재였죠. 프로야구로 치면 과거 쌍방울의 김기태나 조규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철승 관장의 라이프스토리를 잠깐 풀어봅니다. 현재 전주의 덕진공원체육관의 관장인 이 씨는 전북체고 선수시절부터 밤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1982년 김명복박사배 라이트헤비급에서 4연속 KO승으로 최우수복서상을 받는 등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해 한체대에 특기생으로 입학한 유망주였죠. 이 관장은 동기생인 이해정, 안영수, 허영모, 진행범 등과 막강 독수리 5형제 편대를 이루는 기대주였지만 리버사이드 호텔사건 등 워낙 대형사고를 많이 쳐 무려 1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파란만장한 사연이 많았습니다. 이철승 관장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심양에서 충남복싱 선수단을 이끌고 임원으로 전지훈련을 총괄하던 중 그 유명한 피니스 박(지금은 고인이된 박현성, 1968년생 서천)이 5년 선배인 이 관장에게 항명하며 선제타를 날리는 객기(客氣)를 부리자 순식간에 전광석화와 같은 강타를 작렬시켜 그 자리에서 간단히 상황을 진합했죠. 이 일화는 지금도 복싱인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천하의 박현성을 무릎 끓게 만든 이 관장의 원펀치는 야인시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이철승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관장은 얼마전 국제심판자격증까지 취득하며 복싱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이러한 강직한 이철승 관장에게 인간적으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친형처럼 따랐던 지인진은 콩나물 자라듯 쑥쑥 성장했습니다. 지인진은 선천적으로 동체 시력이 뛰어났으며 균형 잡힌 스탠스에 순간적인 센스, 여기에 연타능력까지 보유한 보기 드문 선수였죠. 며칠 후 프로 합격통지서(?)와 함께 500만 원의 스카우트비가 지급되었고 트레이너는 당연히 스카우트에 교량역활을 했던 제가 담당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선수 중 가장 예의바른 복서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지인진은 그 다음 해에 신인왕전 주니어밴텀급 1회전에서 강산체육관 박태선에게 패해 고배를 마시고 말았는데, 밴텀급을 뛰었던 인진이가 체급을 내린 것은 제 불찰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화체육관에서 지인진과 함께 곽영철(성남체육관) 선수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밴텀급으로 신인왕전에 나온다기에 유심히 관찰했는데 한 마디로 발군의 실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체급을 내렸고 결국 지인진은 경기 당일 체중이 오버되고 말았죠. 줄넘기 등으로 체중을 감량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사우나탕에 들어가서 땀을 뽑았는데 그것이 패배로 연결됐습니다. 저는 함께 사우나탕에 들어가며 고통을 분담했으나 결국 잘못된 지도자의 판단으로 지인진은 감량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 차례나 다운을 당하며 석패했죠.
그후 대원체육관의 김진길 관장이 88프로모션에 계약금을 환불하고 데려갔습니다. 김 관장과 함께 지인진은 WBA 페더급 투타임 챔피언으로 우뚝 섰으니 어쩌면 신인왕전의 실패는 전화위복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적 후 지인진은 ‘물만난 물고기’처럼 기록적인 24연승을 올리며 쾌속행진을 이어갔으니 정말 인생살이 새옹지마입니다. 오래전 심영자 회장의 칠순잔치 때 지인진과 오랜만에 담소를 나눴습니다. 21년 전 지인진이 필리핀 원정경기에서 승리한 후 영등포체육관까지 저를 찾아와서 현지에서 사온 두꺼비 저금통을 선물한 이야기를 꺼내자, “관장님! 지금도 그걸 기억하세요?”라면서 해맑게 웃더군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또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백달근이 얼마 전 서울 구의역 인근에 체육관을 오픈했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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