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시간’으로 변한 점심시간에 직장인 고통 -근로자 절반 점심시간 30분도 활용 못 해 -“회사와 직장인 균형 찾을 수 있는 절충점 필요”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직장인 이명호(27ㆍ가명) 씨는 하루 삼시세끼를 모두 회사에서 해결하고 있다. 출근 시간이 이른데다 야근이 일상인지라 저녁도 회사에서 해결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야근이 일상화되면서 이 씨는 점심때만큼은 자유롭게 보내고 싶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이 씨의 상사가 매번 업무지시를 점심식사 자리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점심 자리가 업무회의의 연장이 되다 보니 이 씨는 점심 약속을 잡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달 거래처 직원과 점심을 하느라 팀 회식에 빠졌다”며 “그날 식사 자리에서 중요한 업무지시가 있었는데, 나만 이를 몰라 상사에게 다시 물어본 뒤로는 점심 약속을 잡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식사 시간까지 이어지는 업무 지시에 많은 직장인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법적으로 점심시간은 ‘업무 외 시간’에 해당하지만, 실제로는 업무시간의 연장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벼룩시장이 직장인 553명을 대상으로 점심시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27.8%가 점심시간에 업무 이야기를 나눈다고 답했다. 식사 상대도 응답자의 72.7%가 ‘같은 팀원’이라고 답했다.

지난 2015년 진행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주요 서비스산업 노동실태조사에서도 응답한 노동자의 1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44.1시간으로 조사됐다. 반면, 점심시간을 포함한 1일 평균 휴게시간은 39.6분에 불과했다. 점심시간을 30분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49.2%에 달했다.

이른바 ‘점심업무’를 겪는 직장인들은 이 씨처럼 “업무시간도 아닌 식사시간까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느냐”며 불만이다. 직장인 전재희(30) 씨도 잦은 점심시간 회의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전 씨는 “어차피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데 중간에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인 점심시간마저 빼앗긴 상황”이라며 “피로 때문에 오후 업무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상사 입장에서는 “주어진 업무를 끝내고 일찍 퇴근하기 위한 노하우”라는 입장이다. 한 중견기업에서 차장으로 일하는 유모(48) 씨는 “어차피 일이 많은데, 미리 업무를 배분해놓으면 야근이 그만큼 줄어든다”며 “편한 자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업무에 도움이 될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사정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일본은 업무 외 시간문제가 공론화되자 상사의 업무시간 외 지시를 ‘폭력’으로 규정했고, 프랑스는 업무 외 시간에 일하지 않을 권리를 법에 반영했다. 미국에서는 점심시간에 휴대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관련 법제화가 진행 중이지만, 실제 제도 정착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맞춰 노사가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대원 노무사는 “이미 만연화된 점심 업무지시를 당장 근절하기는 어렵다”며 “회사와 직장인 사이의 균형을 위한 절충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