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대화가 다소 원활하게 진행된 가운데, 남북대화를 지지했던 미국이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한 주간 국정연설과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 의지를 재천명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임명동의(아그레망)까지 받은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주한미국대사 낙마의 배경에 이른바 대북 제한적 타격인 ‘코피전략’(Bloody Nose)이 연관됐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거세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백악관은 “차 석좌의 낙마가 정책 이견 때문은 아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북핵문제를 다루는 데 광범위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으며, 군사적 옵션과 비군사적 옵션 모두 포함된다”고 말했다. 군사옵션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100% 한국과 함께하겠다”며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군사옵션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북대화가 심화될 수록 미국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태도변화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봐주기’식 접촉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2일 탈북자들과의 만남에서는 “(평창)올림픽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다음엔? 누가 알겠느냐. 두고 보면 알 것이다”며 평창 이후 향방에 대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만은 1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올림픽 개막식 전날 열병식을 준비하고 ‘핵에 의한 평화’ 전선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거듭 피력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은 22일 CBS 인터뷰에서 “북한 미사일 저지를 위해 비밀작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백악관 관리는 지난달 23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중동방문 직후 “김정은이 올림픽을 납치하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올림픽 대화만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며 “남북간 대화가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표를 흐트러뜨려서는 안된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미 소식통도 “문재인 정부가 북측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미국과 나눈 소통은 긴밀한 협의라기보단 ‘통보’에 가까웠다”며 “미국은 한국 정부와 대북정책을 긴밀하게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형태의 소통이 반복되면 상호 불신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관은 다름 아닌 문 대통령과의 통화보단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2일 오후 10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1시간 통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대북정책을 논의한 뒤 문재인 대통령과 30분 간 통화했다. 백악관에서 공개한 4문장짜리 미일 정상통화 보도자료와 3문장짜리 한미 정상통화 보도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는 대북 해상차단 및 미사일방어체계(MD) 강화 등 대북압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문 대통령과는 평창올림픽의 성공기원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연결한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과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온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 간의 조율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의 모멘텀이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이바지하기를 희망한다”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올림픽을 계기로 양측이 만난다면 북미 간 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문제는 미국이 당장 북미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올림픽 개막식 전 리셉션이나 여자아이스하키팀 등에 펜스 부통령이 방문하는 계기 자연스러운 북미접촉을 연출하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이같은 연출을 감행할 의사를 일부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가 북미 비공식접촉을 강행할 경우 한미 실무단계에서의 신뢰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백악관과 국무부 정례브리핑, 펜스 부통령의 전언 등을 통해 북한이 아직 진지한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북미간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왔다. 한 미국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북미대화를 강행하면 한국 정부가 각종행사 계기 외교적 결례를 반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며 경계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 이후 북미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북한과의 신뢰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신뢰관계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 부원장은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대화를 통해 어떤 결과를 이끌겠다는 확실한 플랜을 보여줘야 한다”며 “평창 이후 북미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만 하면 미국은 한국의 설득대상이 북한이 아닌 미국이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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