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는 덧칠로 그림을 망친다고 한다. 선을 그을수록, 색을 얹힐수록 본래 그림에서 멀어진다. 속도가 현저히 줄어든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속도는 점점 줄어드는데 더 많은 작업을 시키면 과부하가 걸려 그 어떤 작업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가장 빠른 해결책은 포맷이다. ‘놔둠의 미학’, ‘비움이 미학’이 갖는 장점이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큰 줄기의 규제 이상으로 세세한 부문의 규제는 그림을 망치는 덧칠이거나 느려진 컴퓨터에 더 많은 연산을 시키는 것과 흡사하다. 시장의 논리에 인위적인 규제는 자칫 시장의 논리를 역행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작금의 유통정책이 그렇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꾸만 덧칠을 하려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소상공인업계 보호를 위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에 대해 월 2회 의무휴업제를 도입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영업시간도 대형마트처럼 오전 10시에서 밤 12시 사이로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에서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영업제한 등의 규제를 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만큼 ‘복합쇼핑몰 규제’는 현실화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연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을까? 소상공인업계 전문가들은 골목상권을 위해 최소한의 보호막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보호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과거 대형 마트 규제 속에서 골목상권이 살아났느냐는 것이다. 대형마트 규제로 오히려 문앞까지 배송해주는 온라인 쇼핑몰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게 업계 판단이다.
일부 복합쇼핑몰 입점업체들은 자기들도 소상공인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복합쇼핑몰 입점업체는 “복합쇼핑몰 안에서 영업하는 사람들도 소상인들이기 때문에 복합쇼핑몰 규제로 다른 소상공인의 피해가 발생한다”면서 “일부 소상인을 희생시켜 다른 소상인을 살리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 강화에 가로막혀 유통업체들은 수익성 고민과 함께 혁신매장 도입에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세상은 4차산업혁명 속에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국내 유통업계는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인공지능(AI) 무인점포 ‘아마존 고(Amazon Go)’를 공개하고 ‘무인 수퍼마켓 시대’를 본격화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도 올해 베이징시에 ‘허마센셩’ 수퍼마켓 30곳을 추가로 오픈하겠다고 발표했다. ‘허마센셩’은 신유통을 대표하는 신선식품 오프라인 매장으로 무인으로 운영된다.
국내 유통업계 관계자는 “무인점포가 일자리 확대라는 정부 정책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해 무인점포 운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스런 상황”이라고 했다.
4차산업혁명의 새로운 물결에 맞춰 정부와 업계가 합당한 유통 규제와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나눌 시간이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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