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피부과 의료사고…“보관 편해서” 핑계 -제기능 해야 할 냉장고 반년째 ‘고장’ 상태 -경찰, 최종결과 나올 때까지 병원장 ‘출금’ 조치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이번에도 편의주의가 부른 인재였다. 20명의 환자가 집단 패혈증 증세를 보인 서울 강남구의 피부과 의료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과 보건당국이 주사제를 상온에 내버려뒀다는 병원장의 진술을 바탕으로 정식 수사 전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병원장 박모(43) 씨에 대해서는 정식 수사 전환 전이지만,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7일 발생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피부과 병원 관계자들에 대한 내사를 계속하고 있다. 병원 내 직원 모두를 불러 조사를 진행한 경찰은 “프로포폴을 주사기에 옮겨 고장 난 냉장고에 방치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책임자 입건을 저울질하고 있다.

사고 당일 주사제를 맞고 패혈증 증세를 호소한 환자 20명은 대부분 일반 병실로 옮겨져 회복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환자 모두 생명이 위독한 상태는 아니다”라며 “호전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당국의 정확한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경찰 조사에서 병원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프로포폴 주사제가 변질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밀봉된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야 하는 프로포폴 보관 규정을 어겼단 것이다.

실제 프로포폴 관리 규정에 따르면 미개봉 프로포폴 주사제의 경우 2~25도 사이의 환경에 보관해야 한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단순히 주사제를 상온에 방치했다고 해서 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병원 측이 환자가 몰린 상황에서 편리성 탓에 프로포폴을 미리 주사기에 옮겨놓았다는 점이다. 밀봉 상태가 아닌 주사기에 있던 주사제가 외부 공기와 만나 쉽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해 환자들에게 쓰였던 주사제는 밀봉 용기가 아닌 주사제에 미리 옮겨져 상온에 방치됐다. 주사기에 옮겨놓은 프로포폴은 12시간 안에 사용해야 하지만, 이번 사고 당시 주사기는 상온에서 60시간 이상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제 기능을 해야 했을 냉장고는 지난해 12월부터 고장 난 상태였다. 병원 관계자는 “냉장고에 잠금장치를 설치하려다 냉장 기능이 고장 난 상태였다”며 “다른 곳에 보관했어야 하지만, 사고 전날이 연휴라 신경 쓰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형적인 병원 내 인력 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고가 난 병원 내에서 의사는 원장인 박 씨 한 명뿐으로, 나머지 직원들은 간호조무사나 피부관리사들이었다. 원칙적으로 프로포폴을 주사할 때는 의사가 참여해야 하지만, 부족한 인력 탓에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주사제를 잘못 투여했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주사제 오염이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내놨던 질병관리본부는 현장에서 확보한 주사제 등을 역학 조사하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주사제 오염이 원인으로 밝혀지면 책임자에 대해 정식 입건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단순 보관 실수가 아닌 프로포폴 재사용 정황 등이 드러날 경우 입건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지난 10일 법무부에 박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