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규 한국감정원장 취임 100일, 신뢰성 높이기 행보 “3년내 공시가격 형평성 문제 모두 해결 앞장서겠다”

지난 2월 26일 한국감정원(이하 감정원)은 49년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김학규(61) 원장 취임이다. 1986년 4월 감정원에 입사해 2016년 1월까지 만 30년을 근무하고 퇴임했다가 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 공직자가 아닌 순수 감정원 출신으로 수장이 된 첫 번째 사례다. 부동산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현실화 논란 등으로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여서 더욱 주목받았다.

5월 28일 오후 대구시 동구 감정원 본사에서 만난 김 원장은 “자긍심 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더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원장이 늘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조직문화가 다소 수동적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누군가 와서 해결해 주겠지’ 했죠. 그런데 이젠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하면 누구나 원장이 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많아졌습니다.”

취임 100일을 맞은 김학규 한국감정원장은 “감정원은 빅데이터와 각종 최신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해 공시가격의 신뢰성을 높여가고 있다”고 말한다.
취임 100일을 맞은 김학규 한국감정원장은 “감정원은 빅데이터와 각종 최신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해 공시가격의 신뢰성을 높여가고 있다”고 말한다.

“공동주택 공시가격 문제없다”=감정원은 부동산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산정하고 정부 정책의 근거인 공식 부동산 통계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김 원장은 특히 요즘 공시지가 형평성 논란 등으로 국민들로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부담이 더 크다고 했다.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와 차이가 크다’라거나 “부동산 통계가 정확하지 않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라는 등의 지적이 거세지면서 감정원이 늘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공시가격 제도가 시작된 2005년부터 감정원이 맡았던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실거래가 반영 논란이나 형평성 문제가 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실거래가 반영률이 한참 낮은 고가 ‘단독주택’ 공시가격 인데 그것도 우리 책임으로 돌리는 건 부당합니다. 이 업무는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민간 감정평가사들이 하다가 2017년부터 우리가 맡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책임이죠.”

김 원장은 “고가주택이 저가주택보다 실거래가 반영률이 낮아서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 불합리하다”며 “3년 내 부동산 유형별, 지역별, 가격별 공시가격의 형평성을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재건축 부담금 관련 조사 자신감=최근 논란이 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부담금’ 예정액 산정에도 한국감정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먹구구식(?)’ 부담금 산정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원장은 한국감정원의 조사결과는 가장 신뢰할만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어떤 민간 기관 보다 부동산 조사를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가장 많은 전문가를 동원해 사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체계적이고 공정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 연구원만 40~50명입니다. 아마 우리가 공적기관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들이대는 잣대가 더 엄격한 것 같습니다. 보다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정원은 토지의 자동특성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고도화했다. 실거래가를 적용한 알고리즘도 만들었고, 개별부동산 검증시스템을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다. 빅데이터와 각종 최신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해 공시가격의 신뢰성을 높여가고 있다는 게 김 원장 설명이다.

김 원장은 내부 출신이기 때문에 ‘부동산 통계서비스’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외부에서 CEO가 왔을때는 아무래도 새로운 법안 추진이라든지 대외적인 업무에 집중하지만, 자신은 늘 해오던 일의 장점을 살려 보다 적극적으로 대국민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정원에서 부동산연구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게 ‘부동산 통계허브’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관련 업무를 해오면서 우리 통계 시스템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통계가 정부에 정책 수립을 위한 데이터로 제공되는 것뿐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접근해 활용할 수 있도록 ‘부동산 통계서비스’를 강화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혁신경영 주도=감정원이 지금처럼 ‘부동산시장 조사ㆍ관리 및 공시ㆍ통계 전문기관’으로 변신한 건 2016년 9월 한국감정원법이 통과되면서부터다. 민간 감정평가업체들이 하는 개별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수주 업무를 하지 않고, 공기업으로서 공적 역할을 강화한 것이다. 김 원장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당시 감정원 혁신경영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이를 주도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감정평가 업무를 굳이 버려야 하냐는 비판도 많았지만, 김 원장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판단했다.

“제가 감정원에서 ‘감정평가를 버리자’고 가장 먼저 주장했습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정보사회입니다. 신용사회로 갈수록 감정평가 영역은 넓어집니다. 공신력 있는 감정평가가 점점 더 많이 필요해 집니다. 한편으로 요즘은 각종 컨설팅업체, 금융업체, 경제연구소 등에서 너도나도 부동산 관련 조사보고서를 만듭니다. 사실상 많은 다른 영역에서 '유사 감정평가'를 합니다. 그런 흐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감정평가업계에 미래가 있으려면 이젠 단순한 감정평가가 아니라 더 많은 정보가 담긴 고부가가치 감정평가를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기업으로서 그 시장에서 경쟁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정평가사와 경쟁관계 아니다”= “감정평가업계도 변신해야 한다”며 민간 감정평가업계에 쓴 소리를 곧잘 하는 그지만 소통에는 자신 있다. 특히 감정평가업체들의 모임인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김순구 회장과 평소 친하게 지낸다. 감정원 노동조합위원장 출신인 김 회장은 수시로 김 원장에게 ‘카톡’을 보낸다. 김 원장도 수시로 의견을 묻는다. ‘형님’과 ‘동생’이 서로에 대한 호칭이다.

“일부에서 감정원과 감정평가사협회가 서로 각을 세우는 것처럼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며 합리적인 대책을 찾고 있죠.”

신앙&6명의 자녀=김 원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세 가지 선택이 있다고 했다. 교회를 다닌 것,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 그리고 감정원에 입사한 것이 그것이다. 매일 새벽 4시50분 일어나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6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주고 있는 아내에 감사하며, 감정원에서 보람을 갖고 일하는 게 즐겁다는 것이다.

“49년 감정원 역사 속에 저의 흔적이 31년이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이젠 달라진 환경에서 감정원이 부동산시장관리 전문 공기업으로 자리 잡도록 더 열심히 해야죠. 제가 외부 인사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후배들에게도 가능성이 열리니까요. ”

김 원장은 무슨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메모광이다. 손가락을 이용해 스마트폰 자판으로 글을 쓰는 속도가 펜으로 적는 것보다 빠를 정도다. 기자에게 최근 들었던 생각들이라며 스마트폰 화면의 메모판을 보여주는 데, 직원들에게 전할 말, 회의 내용, 책에서 따온 문구 등 다양한 내용들로 수십 페이지가 꽉 찼다.

“집에가면 7살짜리 막내와 싸우면서 지냅니다. 제 나이가 60살이 넘는걸 자주 잊고 지내죠. 하하”

평소 알고 지내던 감정원 직원 몇몇에 김 원장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후배들을 잘 이해해주면서도 솔선수범 이끄는 ‘덕장’이라고 했다. 과거 외부에서 온 원장들은 대부분 임기 후 옮겨갈 다른 자리를 염두에 두고 단기성과에 연연했다면 김 원장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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