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지금 (한반도 문제와 관련) 큰 물줄기가 형성돼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연락사무소가 대북제재 위반인지 여부는 큰 물결에 걸림돌이 되거나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너무 협소한 문제이다” (2018.08.22.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정례브리핑)

연락사무소.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이 관계개선을 위해 설립하는 초기단계의 외교채널. 연락사무소의 기능만 따져보면 맞는 말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제재위반 근거는?= 그러나 최근 미 행정부 고위관리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연락사무소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우리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reaffirm)했는데, 그 이유는 남북관계 발전은 반드시(must happen) 비핵화 발전과 발을 맞춰야(lockstep) 하기 때문”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느린 템포의 북미 비핵화 협상을 뒤로한 채 남북교류 속도를 높이는 문재인 정부에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실제 대북제재 실무를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국무부와 재무부 내에서는 연락사무소 운영을 위한 전력공급 및 유류 반입이 엄연한 제재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 북한에 대한 정유제품 공급ㆍ판매ㆍ이전을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고 있다. 발전기(HS코드 8501)도 제재품목이다.

▶미국發 보도에 만신창이가 된 韓=남북연락사무소뿐만 아니다. 4ㆍ27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남북교류사업 모두 제재논란에 휘말렸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금강산 시설 개보수 당시에도 대북제재 위반 우려가 제기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달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재 면제요청을 받아들였냐는 질문에 “사안별로 심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와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들은 남북 교류사업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 의회와 싱크탱크의 냉소적 시각이 일파만파로 퍼뜨린 것은 ‘북한산 석탄 국내반입 사건’이었다. 먼저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올 상반기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보고서에서 북한산 석탄이 한국내 반입된 정황이 있다고 한 점을 보도하면서 국내적으로 논란이 됐다. 보도시점은 공교롭게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과 유엔 안보리에 포괄적인 제재면제를 호소했을 때와 겹쳤다.

VOA의 문제제기가 억지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 당사국으로서 북한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안보리 제재 이행에 모범을 보일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밝힌 대북정책은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하며,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북제재를 유지한다’이기 때문이다. 제재 유예조치는 제재의 틀 안에서 대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산 석탄 국내반입은 결이 다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반입됐다는 첩보를 접했다. 하지만 10개월 가까이 조사에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가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해외정보수집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조직개혁안까지 발표했던 국정원은 미국의 첩보를 확인ㆍ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관세청은 ‘개인업체의 일탈’이라고 했지만, 관리소홀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남북교류사업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 사전 의결없이 속전속결로 처리된 반면, 북한산 석탄은 가격, 그리고 수입신고서 양식 등 종합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반입됐다. 정부가 남북교류사업에 치중한 나머지, 북한 비핵화 견인을 위한 책임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이다. 보수 야당의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공세인 측면도 있지만, 대북제재 위반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다. 더구나 동서발전이 지난해 3월 러시아산 석탄 수입업체 R사의 석탄출처가 의심된다고 신고했을 때 3개 관련기관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점도 ‘방조 의혹’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미 국무부가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밝히며 논란 진압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지만, 한국기업에 대한 미국의 독자제재도 단행할 수 있다는 공화당 의원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싱가포르 해운사에 단독제재를 가해 국내 경제인들의 심리적 불안이 가중됐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미국이 대북 독자제재를 발표할 날, 한국은 북한산 석탄 반입에 대한 조사 중이었다”고 보도하면서 미 의회와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평화모멘텀에 대한 회의론도 커졌다.

▶美가 던진 돌, 남북교류사업에까지 파장= 북한산 석탄 국내반입사태가 터진 이후 미 실무라인과 의회가 바라보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더 이상 외교채널이 아니게 됐다. ‘개성공단’에 있는 연락사무소는 개성공단의 재개를 시사하는 남북경협의 상징이 됐다. 남북교류사업과 관련해 워싱턴의 대표적 외교정보지 ‘넬슨 리포트’에는 “한미 대북공조에 빛샐 틈이 있다는 움직임” 또는 “한미균열이 공론화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들이 잇따라 게재됐다.

주목할 점은 넬슨리포트에 ‘남북연락사무소’(liaison)가 아닌 ‘개성 재개’(reopening of kaesung)’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미 지식인층과 외교계가 남북연락사무소를 단순한 외교적 기능이 아닌 남북경협의 기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남북연락사무소의 기능 자체는 문제의 소지가 없다. 미국도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제2조 2항에 연락사무소 개설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했다. 북미 관계개선의 수단으로서 연락사무소의 필요성을 명시한 조치였다.

안보리 결의 2397호 제27항도 “외교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환영하며 안보리 국가들과 다른 국가들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을 지지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락사무소가 통상 국가간 신뢰구축을 위한 채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안보리 결의상 연락사무소 운영이 제재 위반이 되기는 어렵다.

결국 개성 연락사무소를 둘러싼 한미간 이견은 연락사무소가 아닌 ‘개성공단으로의 전력공급’에 있다. 나아가 개성공단으로의 전력공급이 개성공단 재개 및 남북경협의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미국의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연락사무소가 아니라 ‘개성공단에 있는’ 연락사무소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찰떡같은 한미공조가 중요한 이유= 미국은 비핵화 국면이 풀리기 전에 추진되는 남북경협을 환영할 수 없다. 미국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 조야와 호흡을 맞추지 못한 우리의 국익추구는 자칫 잘못하면 ‘북한산 석탄 반입사건’과 같은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 소모적인 논쟁에 우리의 외교력을 집중시켜야 하는 상황도 반복될 수 있다.

미국에게 제재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레버리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유세현장에서 “제재를 빨리 풀고 싶어도 북한이 핵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협상 관련 비판론에 대해 “나는 아무런 양보(concession)도 하지 않았다. 제재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단으로 제재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달에만 3차례의 대북 독자제재를 감행했다.

한반도 정전체제의 당사국인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는 불신해소 없이 비핵화 협상이 추진되는 방안보다는 남북 및 북미간 신뢰를 다진 판을 세팅하고 비핵화 협상이 추진되는 방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압박국면에서의 협상이 성공률 50%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면 대화국면에서의 협상은 성공률 50%의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라고 볼 수 있다. 똑같은 성공률이라면, 혹은 똑같이 그 결과가 예측불가능하다면 전반적인 분위기와 판을 안정적으로 짜는 게 정부 입장으로서는 이익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산 석탄 국내반입 사건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제재위반 논란은 ‘미국발 보도,’ 혹은 ‘미 지식인ㆍ제재 실무자ㆍ의회의 불만’이라는 작은 돌 하나가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지 보여줬다.

강 장관과 김 대변인이 ‘일부 의견’이라고 치부한 시각이 국내담론과 남북교류사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북한산 국내반입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한국남동발전을 포함한 석탄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모든 발전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도 불가피해졌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한미간 찰떡같은 공조가 중요하다. 다른 것도 아닌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대통령에서부터 의회, 싱크탱크까지 우리는 미국과 발을 맞추든, 설득을 하든, 호흡을 맞춰야 한다. 작은 돌 하나에 치명타를 입는 건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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