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동해 1
1981년 신한동해오픈 재일동포들과 창립자들. 창립자들은 이후 매년 이 대회를 찾아 관람했다.
82년 동해 2
1981년 초대 동해오픈에서 한장상이 우승했다. 이희건 대회장이 트로피를 시상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인천)=남화영 기자]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신한동해오픈이 올해로 34주년을 맞았다. 재일동포들이 힘을 모아 국내 골프 대회 최고 상금으로 창설된 이래 국내외 스타들을 끊임없이 배출한 메이저 대회로 자리잡았다. 1981년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에 사는 재일동포 골프 동호인이 모국의 골프계와 친선을 도모하고 한국 골프 발전과 우수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창설한 대회가 동해오픈이었다. 일본에서 고국을 보려면 동해를 바라봐야 해서 대회 이름을 ‘동해오픈’으로 지었다. '국제 무대에서 뛸 수 있는 선수를 배출해 한국 골프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염원으로 개최 자금이 조성되었다. 당시 국내 골프 대회 중엔 최고액인 1500만원이 총상금(우승 상금 300만원)으로 걸렸고,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9월8~11일에 첫 대회가 열렸다.당시는 골프 대회 신설만으로 화제였다. 초대와 2회 우승자인 한장상 KPGA 고문은 회상했다.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어. 당시에는 골프 대회가 많지 않았지. 선수도 적었어. 한국 골프가 발전하려면 대회가 늘어나야 했어. 그래야 선수도 늘어나니까. 그런 의미에서 동해오픈이 큰 역할을 했어. 특히 상금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거든.”

9회 포스터
1989년 9회 대회부터는 신한동해오픈으로 대회명이 바뀐다. 대회 포스터 모델은 8회 우승자 박남신.

한장상은 첫날 78타를 쳤으나 이후 69-78-70타를 쳐서 조호상을 2타차로 따돌리고 3언더파 285타로 우승했다. 시상은 이희건 전 신한금융 명예회장이 했다. 당시 우승 시상식 사진을 보면 트로피를 두 개 들고 있다. 하나는 대회 공식 순회배였고, 다른 트로피는 선수한테 주는 트로피였다. 2회 대회는 상금이 3560만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관악CC에서 개최되어 한장상과 최상호, 최윤수가 1오버파 289타 동타로 마쳐 연장전을 갔는데 연장 두 번째 홀에서 한 장상이 퍼트를 넣으면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상금액 증가하며 메이저로 이후에도 국내 최고 상금을 표방한 이 대회의 상금액은 꾸준히 늘어나 1986년에 1억원을 돌파했고, 20회이던 2002년에는 5억원이 됐다. 이후 2011년에 10억원으로 오른 뒤 2016년인 32회 대회부터는 12억원으로 늘어났다. 남자 골프 최다승 기록의 최상호는 이 대회에서 최다승인 3승을 거뒀다. “상금이 큰 대회는 더 욕심이 난다. 신한동해오픈이 상금이 크니까 프로들이 기를 쓰고 대회에 임했다. 프로의 세계는 그렇다. 신한동해오픈이 프로들에게 여러모로 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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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동해오픈이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신한금융그룹(당시 신한은행)이 89년 타이틀스폰서로 나선 덕분이다. 순수 민간 자본 은행인 신한은행과 제일투자금융, 신한증권이 공동 주최하면서 ‘신한동해오픈’이라는 대회명을 가지게 됐다. 1981년 창설이래 대회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IMF 외환 금융 시절인 1998~99년 2년간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메인 스폰서인 신한은행이 종합금융그룹으로 바뀌던 2003~04년까지 2년을 포함해 총 4년의 맥이 끊긴다. 하지만 대회가 일단 개최되면 최고의 대회를 만들어왔다. 4년 전인 2015년에는 이 대회 우승자의 코리안투어 시즌 출전권이 5년으로 확대됐다. 5년 시드권을 부여하는 대회는 내셔널 타이틀인 한국오픈, KPGA선수권 뿐이었으나 신한동해오픈이 여기에 들어가면서 메이저 반열에 올랐다. 그게 가능했던 배경에는 골퍼들이 신한동해오픈을 메이저 대회로 인식한다는 점, 오랜 역사와 전통, 신한금융이 대회를 통해 자선기금을 조성하고 사회공헌을 실천해온 점 등 국내 남자 투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온 점 등이 다각적으로 작용했다.

좌 안병훈 송영한 양용은 리처드리 박상현 김경태 가간지볼라 장이근 (1)
올해 주요 선수들. 왼쪽부터 안병훈 송영한 양용은 리처드 리 박상현 김경태 가간짓 불라 장이근.[사진=신한동해오픈]

국제 규모로 해외 진출의 교두보 신한동해오픈은 37년이라는 세월에 34회를 거치면서 많은 역사를 써왔다. 창설 당시의 한국 골프 발전을 위하는 마음은 우리 스스로 골프 강국 반열에 올라서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경주, 김민휘, 배상문, 안병훈 등 신한동해오픈 우승자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PGA투어에서 한국 골프의 위상을 드높인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신한동해오픈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 아시안투어와 공동 주관 대회로 열렸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16년부터 아시안투어와 다시 공동 주관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로써 신한동해오픈은 아시아 주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겨루는 국제 대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운드를 마친 외국 선수가 프레스룸에 와서 인터뷰를 하고 그게 영상으로도 기록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KPGA 단독 대회로 열릴 때에도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는 최경주를 비롯해 세계적인 수퍼스타를 매년 초청해 수준 높은 대회를 만들어왔다. 짐 퓨릭(미국), 마이클 캠벨(뉴질랜드) 등이 초청되었고, 2011년 폴 케이시(잉글랜드)는 초청 선수로 와서 우승까지 했다. 국제 대회를 하는 규모와 코스 세팅이었던 만큼 외국인 우승도 한국오픈 다음으로 많다. 1984년 일본의 세이지 에비하라 우승을 시작으로 86년 센충상(대만), 89년 요이치 야마모토(일본), 94년 지브 밀카싱(인도), 97년 에드워드 프리얏(영국), 2010년 존 허(미국), 2011년 폴 케이시(잉글랜드), 2016년 가간짓 불라(인도), 2017년 리차드 T.리(캐나다)까지 모두 9명이었다.

역대 최다승은 최상호가 3승(5, 13, 15회)을 기록하고 있으며 한장상(1, 2회), 최경주(23, 24회), 배상문(29, 30회)이 2승씩을 했다. 연장전에서 우승자가 가려진 경우는 6번(2, 15, 16, 17, 21, 28회)이었다. 대회장은 한성컨트리클럽이 8번으로 가장 많았고, 레이크사이드가 6번, 제일이 5번, 잭니클라우스와 베어즈베스트(올해 포함)가 각각 4번, 남서울이 2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