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자 탁구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문산수억중고 탁구부. [사진=박건태 기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자 탁구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문산수억중고 탁구부. [사진=박건태 기자]
1970년에 개교한 문산수억고는 지난 2009년에 탁구부를 창설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박건태 기자]
1970년에 개교한 문산수억고는 지난 2009년에 탁구부를 창설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박건태 기자]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도 20분을 더 가야 한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의 수억고가 아니라 ‘문산수억고’(혹은 문산수억중)가 공식 명칭이다.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학교. 탁구로는 한국중·고등학교탁구연맹(회장 손범규) 소속 77개 학교 중 가장 북단에 위치했다.문산수억의 탁구를 얘기하면서 가장 먼저 지리적으로 접근한 것은 한 가지 오해를 풀기 위해서다. 한국 여고탁구의 최강자, 인구가 밀집한 경기도 소재의 수도권 학교로 알기 쉽지만 전형적인 ‘시골학교’다. 실제로 한국중·고탁구연맹, 헤럴드경제, 월간탁구의 공동기획인 ‘탁구 명문교를 찾아서’가 찾은 6개 학교 중 가장 시골스러웠다. 가는 길, 그리고 학교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이는 두 번째 오해로도 이어진다. 3년 전부터 문산수억중·고는 유투브 동영상 레슨으로 동호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이름이 알려졌다. 중·고학생들, 그것도 여자선수들의 플레이가 실력향상을 원하는 동호인들에게는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중·고팀이 이 정도 동영상을 제작할 정도면 여건이 참 좋겠다’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산수억중·고의 환경은 열악하다. 학교건물 3층에 위치한 노후한 강당을 훈련장으로 쓴다. 직접 와서 딱 보면 ‘아 여기서 어떻게 최고의 선수들이 나왔지? 동영상에 나온 그 학교가 맞나’라며 놀란다. 학교와 붙어 있는 선수들의 숙소(요즘 합숙과 관련한 스포츠미투가 한창이지만, 수억과 같은 시골학교는 꼭 필요하다!)도 마찬가지다. 학교 예절관으로 쓰던 곳을 개조해서 쓰고 있는데, 일본 탁구의 대부인 무라카미 야스카즈 감독이 와서 보더니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운동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원래 스포츠는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 중 하나다. 지리적으로, 또 기타 여건으로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 문산수억의 탁구가 어떻게 전국 최강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전국 최강으로 발돋움한 문산수억고 탁구부, 맨 왼쪽이 신민성 문산수억고 감독, 오른쪽이 김상학 문산수억고 코치. [사진=박건태 기자]
전국 최강으로 발돋움한 문산수억고 탁구부, 맨 왼쪽이 신민성 문산수억고 감독, 오른쪽이 김상학 문산수억고 코치. [사진=박건태 기자]

■ 지천명의 학교 공자님은 ‘사람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수억중이 1969년(수억고는 1970년)에 개교했으니, 학교는 제법 튼실한 중년이다. 파주와 문산 쪽에서 똑똑하다고 하는 학생들이 대대로 이 학교를 거쳤다. 유네스코학교로 지정된 수억고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산여자상업고(70년)-문산여자종합고(79년)-문산여고(2002년)-문산수억고(2015년 남녀공학)로 개명했다. ‘수억’은 설립자 이수억 선생의 이름에서 빌려왔다. 탁구는 2009년에 창단했으니 꼭 10년이 됐다. 2018년 수억고가 전국 4관왕(최대가 6관왕)으로 최강자에 올랐으니 신흥명문인 셈이다. 당연히 수억고로 선수들을 공급하는 수억중도 대회마다 우승경쟁을 펼치는 강호다. 말이 쉽지 창단 10년 만에 이견이 없는 전국 최강이 되는 것은 탁구나 스포츠는 물론이고, 그 어떤 영역에서도 쉽지 않다. 2000년대 들어 경기 북부에서 탁구열기가 높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탁구인들이 뜻을 모아 우수선수를 영입하며 수억의 탁구는 시작됐다. 흥미로운 것은 열정이 강했던 만큼 우수선수를 확보해 시작인 2009년부터 전국 4강권의 성적을 냈다는 점이다. 톱다운 방식보다는 다운톱 방식의 저력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 진격의 수억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최북단의 학교 수억은 호성적만큼이나 우수 선수를 다수 배출했다. 국가대표 이시온(삼성생명)을 비롯해 위예지(삼성생명), 강가윤, 강다연(이상 대한항공), 신지은(전 포스코에너지) 등 실업은 물론이고, 유니버시아드 금메달리스트인 김효미(공주대), 차예린, 이수정(인천대), 김민선, 김명선(용인대) 등 대학 강자들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수억의 탁구가 ‘현재’ 절정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예지(삼성생명)가 졸업했지만 2019년 수억고는 여전히 강하다. 가장 최근의 여고랭킹을 보면 톱10에 무려 4명을 올려놓았다. 유한나(2년) 2위, 안소연(2년) 5위, 김예린(3년) 7위, 이승미(3년)가 10위다. 12위인 강은지(2년)를 포함하면 무려 5명이 정상급 선수다. 랭킹상으로는 독산고에 앞서고, 이 정도면 못해도 준우승인 전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2학년 3인방이 내년에도 건재하고, 또 수억중의 김예진(3년), 이다은, 이규리, 김민서(이상 2년) 등이 성장하고 있는 까닭에 수억탁구의 전성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문산수억은 문산초와 의정부새말초 문산수억중-문산수억고로 이어지는 선수수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수억고의 경우, 독산고와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수억고의 김상학 코치는 “상대팀이지만 독산고 선수들의 자세가 뛰어나다. 전력에서 뒤진다고 생각한다. 올해 좋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보다 수억이 훨씬 낫죠”라는 독산고 석은미 코치의 말과 유사하다. 라이벌 두 팀이 서로 상대가 낫다며 자신들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두 팀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보여준다. 2019년 여고탁구의 최대 관전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 수억의 장밋빛 미래 수억탁구의 힘은 전문가들의 열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탁구인 출신의 신민성 선생님이 수억고 탁구부 감독을 맡고 있고, 축구선수 출신인 유준용 선생님이 중학교 감독이다. 여기에 ‘기술자’로 유명한 김상학 수억고 코치는 창단부터 지금까지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다. 이들의 노력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문산수억의 탁구가 전국 최강으로 우뚝 서자, 인구 45만의 파주는 탁구 열기가 더욱 높아졌다. 축구 시민구단과 레슬링팀이 있지만 탁구에는 못 미친다. 지난 12월부터 후원회가 재정립하며 지역사회와의 연대도 강화했다. 파주시체육회가 전폭적인 후원을 하고 있고, 파주시탁구협회의 우일환 회장(신성교통 대표)도 탁구마니아로 문산수억중·고를 아낌없이 돕는다. 여기에 지역구 박정 국회의원은 동인천고 2학년까지 탁구선수를 했던 경기인 출신이다.그래서일까 수억탁구의 미래는 밝다. 숙원인 전용체육관을 건립하고, 파주시청 여자탁구팀을 창단해 지역사회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흥미롭게도 이런 시스템은 라이벌인 문성중·독산고(명문교 시리즈 5편)와 닮은꼴이다. 초등학교부터 실업팀까지 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두 학교가 여고탁구 양강이니 어쩌면 한국 학교탁구가 나아갈 길을 미리 보는 느낌이다. 인구 45만의 파주는 겨울이 춥고 길어서인지 몰라도 탁구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썩 좋지 않은 여건에도 탁구파워가 지역사회로 퍼지고 있다. “생각보다 학교가 (서울에서) 멀죠? 다들 놀랍니다. 그리고 여건도 그렇죠? 또 놀라죠. 그래도 탁구열기는 저희가 최곱니다. 운동은 여건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알고 보니 문산수억중·고에 처음 들어설 때 신민성 감독이 건넨 첫 인사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박건태 기자] ■ [탁구 명문교를 찾아서 (6) 문산수억중·고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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