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치면 9회말 투아웃, 3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친 느낌이 든다. 이래저래 고약한 위기에서 모든 것을 뒤집는 한방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64)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대한체육회의 각종 문제가 불거지며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비슷한 시기 지상파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서 ‘골프접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여기에 2019년 연초에는 ‘스포츠 미투’와 관련해 사퇴 시위까지 벌어지는 등 자칫 임기를 채우지 못할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23일(한국시간) 집행위원회를 열어 이기흥 회장이 포함된 신규 IOC위원 10명을 추천했다. 이들은 오는 6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IOC 총회(24~26일)에서 IOC 위원 전체투표를 거쳐 새 IOC위원으로 선출된다(투표는 26일 예정). 집행위가 추천한 후보가 총회에서 부결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IOC위원 확정’인 셈이다(이기흥 회장은 NOC 자격). 사실 근간의 위기와는 별도로 이기흥 회장은 IOC 위원과 관련해서도 따가운 시선을 받았고, 또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6월, 대한체육회는 이사회를 통해 이기흥 회장을 IOC 위원으로 추천했다. 이에 대해 '셀프 추천'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IOC 집행위원회는 그해 9월 IOC 총회를 앞두고 이기흥 회장을 추천하지 않았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IOC위원 추가 선출이 유력해 보이던 시점이었기에 ‘이기흥 IOC 위원’은 국내외적으로 물건너 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 어떻게 이기흥 회장이 체육계 내부에서조차 모르고 있던, 이미 버린 카드로 생각됐던 ‘IOC 위원’이라는 역전 만루홈런을 날릴 수 있었을까? (1) 냉정하기만 한 국내평가와는 달리 평창 올림픽 성공개최, 남북 체육교류 등이 IOC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2) 혹은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의 비서관(1985년), 조계종 중앙신도회장(2012년), 성공한 사업가(우성산업개발 대표) 등을 거치며 구축한 막강한 인맥이 작용했다. (3)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표현처럼 ‘부처님의 가피(자비심으로 중생에게 힘을 줌)’가 있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IOC 내부가 베일에 쌓여져 있는 까닭에 정답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한국의 집권층이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을 IOC 위원(개인자격) 후보로 은밀히 추천했다가, IOC의 퇴짜를 맞았던 것도 그 속사정이 소상히 알려지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싫든 좋든 이제 이기흥 회장이 한국 스포츠의 중심인물이 됐다는 사실이다. NOC 자격 IOC 위원은 정년이 만 70세가 되는 해(이기흥 회장의 경우 2025년)의 12월까지이고, NOC 지위(대한체육회장)를 잃으면 IOC 위원 자격도 상실한다. 또 이 경우 IOC 위원직은 승계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20년 12월로 예정된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이기흥 현 회장에게 아주 유리하다. 낙선할 경우, 한국의 IOC 위원이 한 명 사라진다는 강력한 재선이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체육계에서 ‘천운을 타고 났다’는 평을 듣는 이기흥 회장은 사실 대한체육회장이 되는 것도 극적이었다. 2016년 첫 통합대한체육회장을 뽑는 선거에서 ‘최순실의 비서’로 통하는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이기흥 후보를 대놓고 방해했다. 박근혜 정권의 위력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힘들다고 했지만 여권 후보가 3명이 나오고, 이기흥 회장이 그간 체육계에 깔아놓은 저력이 살나면서 선거에서 이겼다. 이후 촛불혁명을 거쳐, 박근혜 일당이 교도소로 가는 등 국내 정치환경도 그를 도왔다.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다’고 했다. 두려울 것이 없는 한국의 체육대통령으로 한국체육을 뿌리부터 개혁할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기흥 회장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지난 임기 동안 칭찬과 격려보다는 노골적인 비난과 비판을 많이 들었다. 이는 부인하기 힘들다. 지지세력의 분화로 생각지도 않은 적이 생겼고, 언론과의 사이도 나쁘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선이 그어졌고, 선거 때 자신을 도왔던 일부 정치권과도 각이 섰다. 무엇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체육인들의 실망이 컸다. 그렇다면 이 번이 두 번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엔 IOC 명함까지 얻었으니 여건은 더 좋아졌다. 날개를 단 호랑이가 독수리의 호위까지 받는 형국이다. 부디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제 그의 악수는 단순히 개인이 아니, 체육계, 그리고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도 연관돼 있다. 한국은 대통령도 탄핵시키는 나라다. 체육계 절대권력이었던 고 김운용 IOC 수석부위원장도 정권의 사정칼날에 한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 앞으로도 이기흥 회장의 잘못이 이어진다면 이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간 만큼 그 충격도 더 클것이다. 지금 체육계에는 스포츠 인권 신장, 체육복지 강화, 엘리트체육 경쟁력 고양, 남북체육교류 및 2032 하계올림픽 유치 등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전 세계에 100명이 조금 넘는 사람(정원은 115명, 현재 95명)에게만 주어진 IOC 위원의 높은 명예에 걸맞게 한국의 11번째 IOC 위원이 두 번째 기회를 제대로 살렸으면 한다. 그의 법명, 보승(寶勝) 즉 ‘보물과 승리’라는 뜻처럼 그에 대한 최종 평가가 '승리한 보물'이 되어야 한다. 그 자신은 물론, 한국체육을 위해서 말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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