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팔로만 싸워 승리한 류진 선수.
한 팔로만 싸워 승리한 류진 선수.
경기 후 김방언 관장(오른쪽)이 울음이 터진 류진 선수를 축하하고 있다.
경기 후 김방언 관장(오른쪽)이 울음이 터진 류진 선수를 축하하고 있다.

지난 주말(24, 25일) 마포구민체육센타에서 제47회 KBI 복싱대회가 열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모인 복싱인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전체적으로 아주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기 중에 한 여자선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왼쪽 팔을 뒤로 돌린 채, 오른 주먹 하나로 경기를 했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고도 우세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어! 한쪽 팔로 싸우는데 이기고 있네.' 1라운드가 끝나니 다들 놀랐고, 경기장 분위기는 숙연해졌습니다. 여성부 70kg급이었던 이 경기가 끝나자 복싱인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던 모습은 사라지고, 일부는 눈시울이 붉히기도 했습니다. 모두 젊은 시절 뜨거운 가슴으로 복싱을 하며 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 팔 선수'의 승리가 선언됐고, 큰 박수로 터져 나왔습니다.한편으로는 한 팔 선수에게 진 상대 선수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원래 스포츠는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법. 한 팔 선수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군포에 있는 SG복싱짐의 류진 선수입니다. 27세의 제빵사인데, 새벽같이 일어나 힘들게 일하고, 저녁에는 복싱을 하는 것이 삶의 낙이라고 합니다. 복싱을 배운 지는 불과 12개월여. 경기하는 모습을 볼 때 과거에 격투기 운동을 한 것 같아 물었더니 "학생 때 태권도 합기도 검도를 했지만 대회에서 한 번도 입상한 적이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류진 선수는 이 경기 후 손가락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쨌든 복싱의 매력에 푹빠진 류진 선수는 이번 대회 입상을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기 1주일을 앞두고 왼손을 다쳐서 반깁스를 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출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 동안의 노력이 아까워 한 쪽 주먹으로도 싸우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변에서 부상이 회복되고 다음 대회에 나오라고 말렸지만, 워낙 본인의 의사가 강해 상대 선수의 허락을 받고 출전한 것이죠. 이 대목에서 '이겨야 본전'인 경기를 승락한 상대선수가 참 고맙습니다. 이렇게 출전이 결정됐고,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국내 최고의 생활복싱 전국대회인 KBI 대회에서 한팔로 뛰는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2018년 초 대전의 외팔복서 손선기 선수가 화제가 된 바 있기에 , 이를 바탕으로 SG복싱짐의 김방언 관장은 철저하게 기술 지도를 해줬습니다. 손선기 선수는 '복싱은 60%는 발로 한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한 바 있었죠. <관련기사 감동의 물결! 진짜 외팔 복서의 등장(클릭)>아쉬운 것은 류진 선수에게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점. 1주일도 동안 스텝을 바꿔가며 앞손 잽을 치고, 상대가 들어오면 발 바꿔서 받아치는 훈련을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평소 복싱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많은 훈련을 했기에 나름 훈련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마침 김방언 관장도 덩치도 작은 여자지만 아주 당찹니다. 스무살에 다이어트 목적으로 복싱을 시작했다가 프로복서까지 됐고, 이후 다시 취미로 복싱을 즐기다가 코치를 하고, 2년 전 관장까지 된 것이죠. 20대 초반에 프로 2전을 하고, 15년 뒤인 27살에 다시 선수로 나서 4번을 더 뛰었습니다. 6전 6패지만 현직 프로복서이기도 합니다. 감히 류진 선수와 김방언 관장 모두, 진정한 복서라고 생각합니다. '용기 있는 자 만이 링 위에 오를 수 있다'는 복싱 격언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일화였습니다. 복싱은 세계챔피언이 되려는 선수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계발과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도전입니다.* 글쓴이 도승진은 현직 치과의사입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누가치과의 원장이죠. 순천향대학병원 치주과의 외래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동시에 하루 한 번 복싱을 수련하는 복싱인입니다. 한국권투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 류진 경기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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