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L코리아 장재훈 대표 “이번은 다르다? 눈 멀어가는 과정”…美선 S&L 위기·한국선 금융위기 경험…“투자 멈출 수 없는 기관, 가치급락 대비를”
“글로벌 경제는 결국 장기로 보면 ‘사이클’입니다. 투자할 수 있는 실물자산보다는 투자하려고 대기 중인 돈이 훨씬 더 많으니, 거품은 생길 수밖에 없죠. 최근 곳곳에서 위기의 신호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수많은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존스랑라살(JLL) 코리아의 장재훈 대표를 만났다. 최근 상업용 부동산 투자환경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20여년의 경험을 잠시 반추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장 대표가 대학 합격증을 받아들고 미국으로 건너가던 1989년은 한참 저축대부조합(S&L) 위기가 미국 전역을 휩쓸기 시작하던 때다. S&L 위기는 1000개가 넘는 금융기관을 도산시켰던 미국 내 초대형 금융 위기로, 금융자유화 이후 부동산 투자를 크게 늘렸던 은행들이 버블 붕괴를 견디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고향인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은 또다시 글로벌 부동산 가격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2004년. JLL 뉴욕지사에서 고객사의 업무시설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던 그는 IMF사태 이후 문이 열리기 시작한 한국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그룹의 기대를 받고 한국 라살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2년 내 운용자산이 두 배로 늘어나는 짜릿함을 경험했지만, 어김없이 2008년은 찾아왔다. 건축학과 대학생으로서 마주했던 충격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더 큰 위기를 목도한 것이다.
Q. 20년 넘게 글로벌 부동산 업계에 몸담아 온 만큼, 사이클에 대한 민감도가 남다를 것 같다.
A. 막상 위기가 터지고 나면 ‘비이성’, ‘거품’과 같은 말들이 붙지만, 돌아보면 ‘이번엔 다를 것이다’며 눈이 멀어가는 과정을 지나왔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호시절만 경험한 셈인데, 사이클을 제대로 겪은 이들이 많지 않다. 최근 2~3년,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곳곳에서 실물경제 위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출금리와 자산수익률 간 스프레드가 점점 줄어드는데, 이는 결국 대규모 공실이 갑자기 발생하는 등 펀더멘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충격을 흡수할 쿠션이 얇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가 다가온다고 해서 투자를 멈출 수 없는 게 기관들이다.
개인들이야 일부를 현금으로 보유할 수 있겠지만, 자산을 위탁받은 기관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수익을 내야 한다. 리스크에 조금 더 집중하고, 관련 인력도 보다 많이 채용할 것을 고객사에 조언하고 있다.
Q. JLL 뉴욕 지사에 근무하기 전, 미국 보스턴에서 건축 설계사로 일했다. 그때의 경험은 부동산 투자 자문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
A. 부동산 자산의 물리적 측면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투자 관점에서도 좋은 인사이트가 된다. 임차인들이 사용하기에 효율성이 낮은 건물이라면, 결국 공실률, 수익률에도 부정적이지 않겠나. 상업용 부동산 투자는 금융, 회계, 법률, 임차관리, 건축설계, 정책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어우러지는 산업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부동산 산업을 바라볼 수 있는 인재들을 JLL이 선호하는 이유다.
Q. 국내 부동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남 집값 때문이든, 혹은 이에 대한 정부 규제 탓이든, 주택용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주택과 관련한 최근의 분위기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A.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 일반 투자자들의 자금이 부동산에 쏠리는 것은, 건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투자 자산이 그만큼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강한 대책을 내놨지만, 아파트 대신 부를 증식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전까지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상장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는 중이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보완책이 마련되면 부동산에 몰렸던 일반인 투자금이 우량 상업용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너무 많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오래된 시장의 지적도 있었으니, 여러모로 선순환이다.
Q. ‘도시는 어떻게 개발돼야 하는가’에 대해 조언하고픈 게 있는지?
A. 부동산 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악(惡)’으로 보는 시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그 도시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수요를 반영해, 이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내집 한 채 보유하려는 이들도 도시의 수요자이지만, 교육열 높은 강남 주택 보유자도 같은 도시의 수요자다. 노점상, 상가 건물주, 수천억 건물을 보유한 기업, 서울을 주목한 해외 투자자, 이들 모두의 수요를 포용할 수 있어야 좋은 도시다. 향후 10년은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의 근간도 흔들릴 것이다. 조금 더 다양한 수요에 귀를 열고 기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Q. 외국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국법인 대표로 국내 경쟁사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문화적 차이를 느끼는가.
A. 상사 결재만 바라보느라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않고, 직원 스스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이 점을 비교하면, 국내 회사들은 그 권한 정도가 훨씬 낮은 듯하다. 2004년 JLL 뉴욕지사에서 한국 라살자산운용으로 이직할 당시, 자리를 제안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이 내게 기대했던 것도 ‘직원들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문화’를 한국 사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 내에서 인력을 채용할 경우, 경직된 문화가 외국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현재 JLL에서는 능력만 갖췄다면 사원이나 대리급 직원도 직접 본인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도록 장려한다.
Q. JLL코리아 직원들이 주목하고 있는 ‘기회’는?
A. JLL글로벌은 제한적인 경쟁사들과 전세계 1~2위 위상을 다투는 회사다. 이에 비해 아직 한국에서의 사업 규모는 미미하다. JLL코리아의 직원수는 280명 수준인데, 1000명에 달하는 일본 법인은 물론 500~600명 규모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보다도 작다. 국가경쟁력을 떠나, 상업용 부동산을 구조화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등 금융을 통해 수요 기반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아직 발전이 더디다. JLL의 고객 기반이 국내 기관으로 보다 확대되고, 시장도 아시아 평균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3~4배 성장도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는 일 외적으로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없다.
더이상 대표가 아닐, 10~20년 후 모습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회사 직원들의 커리어에 보탬이 되는 선배가 돼 있고 싶다”고 답한다. 위기를 고루 경험한 그에게 고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많고,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기에 장 대표는 아직은 “일에 집중할 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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