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실제는 달랐다.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이야기다.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 활동의 역량과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주총회 의안뿐만 아니라 투자대상기업, 투자대상기업이 속한 산업과 관련 제도, 자본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노력합니다.”
국민연금이 채택하고 있는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 이른바 스튜어드십코드라고 불리는 7개 원칙 중 마지막 조항의 내용이다. 구체적 행위의 방식이 1~6번 원칙으로 규정됐다면, 해당 행위의 근간이 되는 ‘태도’는 7번 원칙에 담겼다. 한 마디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잘 알고 하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7번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은 크게 두 절차로 나뉜다. 기본적으로는 기금운용본부에 설치된 수탁자책임실에서 결정한 의결권 행사 방향이 투자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된다. 배당정책에 문제가 있는지, 임원보수가 과도한지 등 ‘중점관리사안’ 해당 여부를 검토해 주주총회에서 어떤 의견을 밝힐지 정한다.
보다 적극 목소리를 낼 때에는 외부로 결정권을 넘긴다. 외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통한 주주권행사다. 수탁자책임위는 ▷(정치·경제적 파장 등 이유로)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 ▷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1 이상이 ‘우리가 직접 판단하겠다’며 요구한 사안 ▷중점관리사안에 해당되는 기업과 ‘대화’를 시작할지 여부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할지, 나아가 이들이 중점관리되고 있음을 공개할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 뉴스로 다뤄질 만큼 파장이 있는 주주권행사는 모두 이 위원회를 거친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수탁자책임위 위원들이 회의 하루이틀 전에야 논의 내용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대표 연임 반대나 정관 변경 요구 등 기업 경영권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시간치고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과거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과정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갑작스레 받아든 안건의 내용이 A4용지 80장을 넘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전문가들로 위원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부실 검토가 우려될 만한 사항은 아니다”라고 설명하지만, 위원회 구성이 전문성보다는 대표성에 치중했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논점을 흐리는 정치적 공방이 늘 빠지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실제 회의 시간은 2시간이 채 안된다는 전언도 있다. 안건의 사전 유출이 문제라면, 보안 서약과 책임 추궁을 강화하면 될 일이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은 여러 논란을 거쳐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경영계의 반발은 여전하고, 노동계도 ‘후퇴했다’고 비판하지만 주주권 행사를 ‘기존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다. 칼날은 벼렸는데, 휘두를 자세를 갖췄는지 자문할 때다.
최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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