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생활의 시계추는 멈췄고, 경제는 한두 달 새 맥없이 침체됐다. 주가는 연일 폭락세이고, 장단기 상관없이 말라붙은 자금줄로 인해 기업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인수·합병(M&A) 시장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M&A 미팅은 줄줄이 취소되는 분위기다. 시장이 고사 직전인데, M&A라고 버틸 여력이 있겠는가. 혹시 M&A건이 나와 미팅이 잡혔다고 해도 향후 사업 전망에 합의한다는 것은 꿈꿀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많은 딜(Deal)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근 인수·합병을 완료한 기업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달라진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지난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 인수·합병 규모는 사상 최대인 37조원대였다고 한다. 작년에 인수·합병을 추진한 기업 중 올해 코로나19로 글로벌 초불황이 올 것을 예측하고 이를 기업가치 평가에 반영한 기업이 몇이나 있겠는가. 갑자기 닥친 글로벌 재난 앞에서 예상했던 M&A 시너지를 기대하기는커녕 인수한 기업 가치가 붕괴하는 것을 보면서 ‘승자의 저주’라는 ‘클리셰’를 떠올리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전 세계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필자는 두산그룹의 M&A 총괄이었고, 그 시점은 두산의 밥캣 인수를 끝낸 직후였다. 소형 건설장비 분야의 글로벌 리더인 밥캣 인수를 위해 두산이 지불한 인수금액은 5조원 이상이었다. 이는 2017년 삼성이 미국 기업 하만을 인수하기 전까지 국내 기업의 해외 M&A로선 최대 규모였다. 그런데 잘나가던 밥캣의 사업은 2008년 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 건설업계가 붕괴하면서 밥캣의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인수 직전 4000억원에 이르던 영업이익은 금융위기 후 2년간 2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밥캣 인수를 위해 4조원 이상 차입을 한 두산은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 공장 폐쇄, 유상 증자를 추진해야 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지 12년이 지난 지난해 밥캣의 경영실적은 어떤가. 매출액 4조5000억원에 영업이익 4770억원으로 그룹 내 최고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승자의 저주’는커녕 그룹의 확실한 ‘효자’가 된 셈이다. ‘미운 오리 새끼’였던 밥캣이 ‘백조’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밥캣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근본 경쟁력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당장의 적자 폭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 할지라도 밥캣은 소형 건설장비 분야의 글로벌 리더가 되게 한 제품과 채널에서의 경쟁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조정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도 밥캣은 핵심 제품군에서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고, 미국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것이다.
인수·합병 이후에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면 적어도 이것은 기억해두길 바란다. 코로나 사태도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인수한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경기가 살아날 때 인수한 회사 역시 ‘백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훈 전 (주)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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