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풀린 돈 47% 재예치

국내은행, 자체자금까지 동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무제한 돈풀기에 나서면서 연준의 자산이 7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은행들은 부실 대출 등을 우려해 이중 절반 가까이를 중앙은행에 재예치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은행들은 정부 눈치 보느라 위기 대비 충당금도 쌓지 못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장기화시 리스크 대응 여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12일 세인트루이스 연준에 따르면 지난 6일 현재 미 예금기관들의 중앙은행에 대한 초과 지급준비금(이하 지준금)은 3조1590억 달러에 달한다. 미 연준이 전대 미문의 양적완화로 이날까지 시중에 공급한 유동성이 6조7214억 달러인데, 이 중 47%를 다시 추가 지준금으로 쌓아 놓은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부실 채권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미 은행들로선 대출 지원에 못지 않게 건정성 관리에도 치중하는 모습이다.

지준금이란 은행들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의 비상 상황을 대비해 예금액의 일부를 중앙은행에 의무 예치토록 한 것인데, 법정 비율 이상의 자금을 맡기는 걸 초과 지준금이라고 한다. 은행들은 금융시장의 불안감 고조시 무수익 조건 속에서도 지준금을 기준 이상으로 쌓게 된다.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첫 0%대로 인하하고 전액공급방식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나서는 등 유동성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풍부해진 상황이지만, 국내 은행들은 초과 지준금은 커녕 대손충당금까지 줄이면서 리스크 관리는 후순위로 밀어놓은 상태다. 정부 주도 하에 코로나19에 대응한 기금 재원 조성과 대출 지원에 동원되고 있는 은행들은 미국에 비해 위기 대비를 위한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제약을 받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2월 현재 국내 은행들의 초과 지준금은 3조6814억원이다. 작년 4월까지만 해도 1000억원 안팎의 수준에 머물렀는데, 미국의 경제제재에 따른 거래 제한으로 이란 멜라트 은행(서울 지점)이 대규모 자금을 한은에 맡기면서 크게 증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멜라트 은행 예금 외에 국내 은행들의 지준금 규모는 변동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각 기관에 따르면 코로나19 리스크에도 신한·KB·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의 올 1분기 대출채권 대비 평균 대손비용률은 0.45%로 작년 4분기(0.47%)에 비해 0.02%포인트 되레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비용률을 평균 1.29%에서 1.97%로 0.68%포인트 껑충 올린 미 대형은행들과 대조적이다.

서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