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넘쳐 자산관리 니즈는 지속
소비자, 비대면 상담·직접투자 대세
은행, 사업전략·조직 등 원점 재검토
PB·기업금융 결합한 PIB사업 활발
국내 자산관리(WM) 시장이 주요 변곡점을 맞았다. 초저금리 탓에 시장에 풀린 유동성은 WM 업계의 기회 요인이지만, 각종 사모펀드 부실 사태 등은 금융소비자들이 WM시장에서 발길을 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기회와 위기가 함께 닥친 형국이다. 주요 금융그룹 WM부문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올해 성과급은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은 WM부문의 기존 영업방식과 사업전략 그리고 조직·인력 구성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그만큼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생사기로(生死岐路)에 선 ‘위기 의식’도 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돌파구를 찾는다면 ‘제2의 도약’도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배어난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헤럴드경제 기자와 만나 “WM사업에서 선택할 게 많아지고 있다”며 “우리가 (WM 고객들의)최선의 판단을 대신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기, WM 실적 곤두박질 = 국내 주요 금융그룹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코로나19 여파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고서도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하지만 WM사업 관련 실적은 4대 금융그룹 모두 감소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올해 상반기 WM부문에서 76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상반기 1200억원에 비해 36% 가량 줄어든 규모다.
그룹 차원에서 별도의 WM부문 실적을 분류하지 않고 신탁, 방카, 펀드 등의 판매를 통해 얻는 비이자이익을 기준으로 WM사업의 실적을 산출하는 KB, 하나, 우리금융의 경우에도 올해 상반기 WM부문 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일제히 줄었다.
WM시장 위축은 고객 불신과 규제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난해 연이어 발생한 투자상품 손실 사태로 인해 고객들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고, 투자 손실을 막겠다며 도입된 정부의 규제 탓에 상품 판매 종류와 액수도 크게 축소됐다. 신규 고객이 유입 안되는 것은 물론 기존 WM고객마저 이탈하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투자상품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은행과 증권사들이 신규 상품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라며 “사모펀드 부실이 이어지며 기존 고객들도 이탈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언택트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는 흐름도 은행들의 WM사업부문에 타격을 가했다. 프라빗뱅커(PB)의 영업력과 일대일 고객 관리를 중요시했던 WM전성 시대 때와는 시대적 문화적 조류가 크게 바뀐 상태다.
일선에서 WM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인력들이 빠르게 진화하는 다양한 금융상품들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개인투자자들은 PB센터를 찾는 대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얻은 투자 정보로 투자시장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WM사업의 주된 수익원인 판매 수수료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면 위주의 자문과 오프라인에서의 상품 판매로는 더 이상 (WM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과거 PB센터를 찾던 자산가들도 비대면 상담을 요구하거나 직접 투자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기회, 시중 유동성과 포스트코로나 경쟁력 = 위축된 국내 WM시장이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는 시각도 많다. 무엇보다 엄청난 유동성으로 무장한 투자 수요가 눈 앞에 있고, 저금리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경기 하강 국면이기에 전문적인 자산관리 니즈는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말 통화량(M2)은 3077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통화량 증가액은 169조1000억원으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반기 기준 사상 최대다.
국내 증시의 대기 자금 격인 투자자예탁금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장내파생상품 제외)은 18일 현재 51조4556억원을 기록, 사상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예탁금은 지난 코로나19 여파로 주식시장에 패닉장세가 나타났던 지난 3월 30조원대에서 약 1.6배 증가했다.
투자자들은 제로 금리 시대에 1%대 예금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투자상품을 찾는 동시에 낮은 비용의 대출을 통한 차입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한 시중은행 WM 담당 임원은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국내 WM시장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시아를 중심으로 WM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라며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과 저금리로 인해 전문적인 자산관리에 대한 니즈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WM사업을 재정비하고 있다. 우선 WM사업 디지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실제 신한은행은 WM과 디지털을 접목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대면 방식의 자문과 상담 서비스에서 한 발 더 나가 비대면 채널을 통해 고객들이 자산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WM의 고객과 사업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공통적인 추세다. 대표적으로 PB와 기업금융(IB)을 합한 PIB 사업이 활발하다. 개인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쳤던 WM사업이 최근에는 법인으로 고객 대상을 확대해 종합자산관리 및 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오는 10월 서울 강남권에 PB와 기업투자금융(CIB)을 결합한 PCIB 점포를 개설할 예정이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인 초고액 자산가 개인과 법인이 대상 고객이다. 앞서 KB금융은 지난달 그룹 내 첫 ‘BIB(Branch In Branch)형 PB센터’를 개설했다. 기존 PB센터에서 제공하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뿐 아니라, 기업금융 및 기업대출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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