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전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는 단연 일본의 소니였다. 워크맨, 트리니트론 디스플레이, 바이오 노트북 등 시장에 내놓는 제품들마다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능을 갖췄고, 지지층의 열광도 대단했다. 마치 지금 미국 애플의 위치에 당시 소니가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소니가 고전한다는 뉴스는 간간히 들려왔지만 최근 소니의 몰락 소식은 회생이 힘들 것 같이 절망적이다. 수 년에 걸친 연속 적자 끝에 올해부터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PC사업부는 매각하고, TV사업부는 분사하기로 했고, 단기 이익을 위해 부동산 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와 무디스사로부터 각각 ‘투기등급’과 ‘투자부적격’ 판정을 받았으며, 2년 안에 파산할 확률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확률이 높다.
한때 전자 기술로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던 기업이 이렇게 순식간에 몰락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다. 2000년대 이후 혁신적인 제품을 더 이상 시장에 내놓지 못한 점, 유연하지 못한 관료 조직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미디어 사업 진출의 실패로 인한 후유증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된다. 소니의 미디어 사업 진출 결정은 1995년 4대 CEO인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영화, 음악, 게임과 같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 투자하게 되면서 기존 전자제품 사업이 부진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후 잘못된 LCD패널 투자 결정으로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는 한국의 삼성과 LG에 밀리게 되고, 스마트폰 시장을 애플과 삼성이 잠식 하는 동안 소니는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소니 몰락의 원인인 미디어 사업 진출의 실패는 성장 동력의 포기에서 비롯됐다. 소니 성장의 핵심은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장인과 같은 기술자들이었다. 한 기업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연관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좋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소니가 미디어 사업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소니의 창업 때부터 내려오던 핵심 경쟁력인 기술을 소홀히 생각하게 된 것이 문제였다. 연구소는 폐쇄됐고 전자 분야 기술자들의 이탈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스스로 기술 장인이라 자부심을 가지던 엔지니어들은 소니가 기술 DNA를 포기하는 순간 회사를 떠났다.
소니의 몰락을 보면서 현재 대한민국 과학 기술 분야가 가지고 있는 위기가 겹쳐 보인다. 전자, 기계 제조업 등 과학기술 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은 90년대 이후 한국을 이끈 원동력이다. 내수 규모가 작고 우수한 두뇌 말고는 활용할 자원이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첨단 전자 기계 제조 분야를 산업의 큰 축을 끌고 나가야 경쟁력이 있다. 최근 K-POP을 위시한 문화, 관광 등의 산업으로 다변화가 필요하지만, 그 역시 핵심 경쟁력을 유지한 상황에서 다변화를 추구해야 유리할 것이다.
대한민국 과학 기술이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바로 교육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 등 현재 중ㆍ고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과학 교육은 ‘융합인재교육’과 ‘행복한 교실’이라는 키워드로 개편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인문학 융합도 강조하고 있다. 과학 교과 과정을 줄이고, 학생들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내용으로 교육을 개편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렵더라도 꼭 배워야 하는 것’들 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것’을 학교와 학생들이 추구하다 보니, 대학교 이후 본격적인 연구 개발에 필요한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분야에서 무리하게 융합 교육을 추구하면서 피상적인 교육만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산업이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의 중추가 되는 핵심 역량인 기술 집약 제조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이 분야에서 혁신을 지속하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성장 산업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장 동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분야에 올인(all in)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 장인들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 분야를 장려해야 하는 것이 국가 정책 입안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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