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상원의원 당선 6주만에
아내·막내딸 교통사고로 사망
루서 킹 영향 인종차별 반대 운동
약자 돕기 위해 국선변호사 활동
36년 상원의원 외교·안보 전문가
기후변화·환경문제에 깊은 관심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조 바이든(77) 후보는 미국인들에게 역경을 딛고 일어선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젊은 아내와 어린 딸의 죽음, 두 번의 결혼, 장남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처를 입었지만, 정치인으로서 바이든은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바이든 후보는 1942년에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증조부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상원의원을 지낼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그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다. 부친은 화로 청소와 중고차 중개업을 하면서 어려운 생계를 유지했고, 처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바이든이 10세가 됐을 때에는 좀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델라웨어로 이사 갔다. 이런 이유로 그는 펜실베이니아와 델라웨어를 자신의 정치적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 2015년 사망한 장남 보 바이든은 델라웨어에서 법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1961년 델라웨어대에 입학한 바이든은 미식축구를 즐겼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마틴 루터 킹, 존 F 케네디, 로버트 케네디 등 많은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며, “나는 그들의 웅변과 확신,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꿈에 휩쓸렸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델라웨어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바이든은 곧바로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한다. 로스쿨 재학 중에 첫 번째 아내인 네일리어 헌터를 만나 결혼하고 2남 1녀를 두었다.
로스쿨을 졸업한 바이든은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웰밍턴에 있는 로펌에서 일하면서 국선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힘 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에 많은 자괴감을 느껴 국선 변호사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그는 뉴캐슬카운티의 카운티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바이든은 적극적으로 지역 사회 이슈를 제기하면서 카운티 의원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10차선 고속도로 프로젝트에 따라 윌밍턴 이웃이 밀려나는 상황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바이든은 민주당으로 델라웨어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게 된다. 당시 29세였던 바이든은 정계 은퇴를 고려하던 공화당의 J.보고스를 꺾고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미국 역사상으로는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었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바이든은 “우리는 너무 자주 의견 차이가 우리 사이에 팽배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야심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차이점들을 과시하는 것을 너무 자주 허락해 왔습니다”며, 변화에 필요한 행동을 강조했다.
로스쿨 진학과 결혼, 자녀 출생 그리고 정치 활동 등 행복할 것 같았던 가정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72년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지 6주 뒤 교통사고로 아내와 막내딸을 잃었으며, 두 아들도 뇌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 의원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이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울면서 취임선서를 하게 된다.
부인과 사별 후 아이들을 돌봐야 했던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과 워싱턴 의사당을 왕복 4시간 걸리는 기차로 통근생활을 했다. 다행히 바이든은 1977년 영어 교사인 질 제이컵스와 재혼하게 되고, 안정적인 상원의원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바이든은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외교 안보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8년간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내며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코소보 문제에 많이 관여했는데,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함께 코소보 문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인연을 바탕으로 바이든은 같은 당 소속이 아니지만 애리조나주에서 6선을 지낸 매케인 상원의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애리조나주의 유권자들의 표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바이든 후보는 상원의원 생활을 하면서 환경 문제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구 기후 보호법 도입해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를 요구했으며, 상원 외교 위원장으로 있으면서도 기후 변화 관련 여러 청문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이 같은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의 도전은 상원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1988년 당시 두 번째 젊은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5위로 참패하며 경선 중단을 선언했지만, 중도 성향의 백인 표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바이든이 수락하면서 제47대 미국 부통령이 됐다. 부통령으로 있으면서 그는 50개국 이상 국가를 방문하는 등 미국의 안전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리더십을 보여줬다.
정치인으로서 바이든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으나, 힘든 가정사는 끝까지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5년에는 그의 장남 보 바이든이 45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델라웨어주에서 법무장관까지 지내며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여겨지던 장남의 죽음으로 바이든은 2016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힘든 가정사는 유권자들의 연민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그에게 정치적인 이득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은 50년간 바이든이 슬픔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박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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