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굴지의 자동차 브랜드와 협력 중인 국내 스타트업의 사례가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기업과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지난해 초 유럽의 ‘글로벌 자동차기업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신청한 자율주행 솔루션 스타트업 A사는 서류 단계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 통보를 받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필자는 글로벌 대기업과 국내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지원사업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자고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A사로부터 동일 대기업의 다른 부서와 연결돼 연구·개발(R&D)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통계학 용어 중 효과가 없는 대안을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1종 오류’로, 효과적인 대안이 있는데 무효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2종 오류’로 일컫는다. 혁신기술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요즘의 현실에 대입해본다면 디지털 혁신을 시도하는 전통 대기업들에 특히 2종 오류는 매우 치명적이다. 게임체인저 기술을 알아보지 못하면 기업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많은 대기업이 벤처투자팀이나 오픈이노베이션팀 등 전담팀을 설치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도 서두에 언급한 사례처럼 본격적인 협력 논의까지도 가지 못하고 서류 단계에서 제외되는 제안서들은 허다하다. 지원기관 입장에서도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협력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종 오류를 피하기 위해선 기존 미팅 중심의 협력보다는 작은 파일럿 테스트를 동반한 현장 실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시제품의 처리 속도는 유지되는지,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나 기존 시스템과 부조화는 없는지, 의도한 목적에 따라 결과물을 산출하는지 등을 실제로 도입해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시간과 인력, 비용 등이 수반되지만 그 대가로 대기업은 혁신의 기회를 얻고 스타트업은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들도 지식 서비스 중심의 무형재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기술 사업화 역할을 하는 실증 기회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무역협회는 글로벌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다방면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해외 실증 테스트베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2019년 코엑스를 포함한 무역센터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 복합다중시설을 대상으로 국내 스타트업에 실증 기회를 제공했고 북미권은 월마트, 타이슨푸드 등 포천 500 기업과 협력을 논의 중이다. 테스트베드에 참여한 글로벌 기업과 우리 스타트업 모두 만족도가 높다.
아마존의 본업은 온라인 서점이었지만 막대한 내부 서버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없던 클라우드 서버 분야를 개척해 결국 이 분야의 선두주자가 됐다. 인공지능(AI)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학계의 연구 대상이었으나 이미 모든 산업에서 효율을 높이는 필수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가벼운 아이디어도 그냥 넘기지 않고 서류 검토를 넘어 현실에의 끝없는 적용과 실패, 보완과 개선을 반복해온 덕분이리라.
세상이 변화하는 변곡점에는 과거의 방식대로 위험 요소를 줄이는 보수적 접근이 안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관습이나 업무 처리 방식에 얽매여 보다 적극적으로 혁신을 주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작은 위험이 두려워 더 큰 기회를 놓치는 ‘2종 오류 사회’에 갇히고 만다.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의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DX)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과감한 시도와 실패를 용인하는 혁신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이야말로 포스트코로나19 시대 한국이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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