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의 값!] 100조 돌파한 쿠팡…밸류에이션 근거는?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플랫폼에서 거래된 금액 자체는 네이버가 더 많다는데..왜 네이버 커머스 몸값은 20조원이고 쿠팡은 100조원이야?’
쿠팡이 결국 사고를 쳤습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커머스의 미래’라고 적은 큼지막한 현수막을 내걸더니, 상장 첫날 주가가 40% 이상 급등했습니다. 장중 한때는 시가총액이 110조원에 달하기도 했네요. 한국 코스피로 치면 네이버(61조원), LG화학(66조원)을 훌쩍 뛰어넘고 SK하이닉스(100조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이 된 겁니다. 현대차와 비교하면 시가총액이 2배 가량이나 큽니다.
네이버가 1등 이커머스 맞아?
근데 이커머스 쪽 뉴스를 챙겨봐 온 독자라면 갸우뚱하실 거예요. 최근 이커머스 분야에서 급성장하는 네이버가 거래액(GMV) 기준으로 쿠팡을 앞선다는 보도가 최근 쏟아졌기 때문이죠.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한해 네이버 플랫폼을 통한 거래금액은 27조원에 달합니다. 쿠팡의 22조원보다 크죠. 이달 초에는 지난 1월 한 달간을 대상으로 하는 데이터를 발표했는데, 결과는 같습니다. 네이버가 2조8056억원으로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쿠팡(2조4072억원)이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네이버에 ‘커머스 1등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 어색하지 않네요.
2등은 2등인데, 더 '비싼' 2등
본격적으로 네이버-쿠팡을 비교하기 전에 잠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이라는 개념에 대해 살펴볼게요. 두 기업 중 어느 기업이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려면, 단순히 시가총액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서 얼마만큼 높은 기대가 반영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예컨대 A기업은 연간 1000억원의 이익을 내면서 시가총액이 1조원이고, B기업은 3000억을 벌면서 1조5000억원 시가총액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당연히 B기업이 더 비싼 기업입니다. 하지만, A기업은 이익의 10배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반면, B기업은 5배에 그칩니다. 투자 용어인 주가수익비율(PER)로 표현한다면, A기업은 PER이 10배고 B는 5배입니다. 이익을 내는 방식이 더 신박하든, 혹은 성장세가 더 가파른 상황이든, 무언가가 A기업에 더 높은 기대치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거겠죠. 이럴 때 ‘A기업이 B기업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 배수(멀티플)를 인정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상 밸류에이션을 비교할 때 PER을 많이 활용하지만, 아직 이익을 내지 않고 있는 기업의 경우는 주가매출액비율(PSR)을 계산하기도 합니다. 이커머스 기업은 어떨까요. 대부분은 막대한 투자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PSR를 고려하는데, 더 중요하게는 몸값이 거래액의 몇배인지를 봅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쿠팡의 몸값을 들여다볼까요. 주가는 기대감으로 형성되니, 과거가 아닌 미래의 실적 추정치를 활용합니다. 증권업계는 올 한해 쿠팡의 거래금액이 3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그리고 상장 첫날, 쿠팡은 약 95조원의 시가총액으로 장을 마쳤습니다. 쿠팡은 거래액 기준 약 3배의 몸값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네이버는? 올해 약 35조원의 거래액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전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61조원입니다. 여기서 커머스 외 검색, 핀테크, 웹툰, 클라우드 등 다른 사업을 제외해야겠죠. 네이버의 적정 몸값을 사업부문별로 나눠 계산해 전망하고 있는 증권업계 보고서를 보면, 이커머스의 비중은 대략 현재 몸값의 3분의1 수준인 듯하네요. 즉, 거래액은 35조원이고 몸값은 20조원이니, 약 0.6배의 멀티플이 반영돼 있습니다. 쿠팡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거래금액이라고 다 같은 거래금액은 아니다
왜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날까요. 두 회사의 사업모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거래금액이라고 해서 다 같은 거래금액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쿠팡은 매출의 대부분을 직매입을 토대로 한 로켓배송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주문이 이뤄지기 전에 미리 상품을 매입해 재고를 쌓아두고, 실제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보유하고 있는 창고에서 신속하게 배송하는 것이 다른 커머스와의 차별점이죠. 이 과정에서 쿠팡은 어마어마한 국내 유통 시장 빅데이터를 누적하고 있습니다. 또 물리적인 물류 인프라, 즉 창고와 배송인력도 확보해 왔습니다.
반면, 네이버 이커머스의 주력은 스마트스토어(오픈마켓)입니다. 판매자들이 네이버 안에서 장사를 하도록 하는 플랫폼이죠. 올해 예상되는 거래금액 35조원 중 60%를 스마트스토어가 올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픈마켓에 적용되는 밸류에이션은 1배수가 채 안 됩니다. 지난해 거래금액 16조원을 기록한 국내 3위 이커머스 이베이코리아는 오픈마켓이 중심인데, 거래금액의 0.3배에 그치는 몸값을 제시하고서도 시장에서 ‘비싸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특히 네이버스토어의 경우, 결제 수수료만 부과될 뿐 개설 및 판매에 따른 수수료는 전혀 없습니다. 만약 이베이와 같은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가치는 6조원대에 그칩니다.
네이버의 거래액을 구성하는 또 다른 사업은 네이버쇼핑입니다. 가격비교 플랫폼으로, 올해 약 14조원의 거래액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격비교 플랫폼은 오픈마켓보다도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낮습니다. 이익이 나는 사업이니 PER로 몸값을 추정하는데요,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PER 밸류에이션을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3조원이 채 안 됩니다. 이 계산대로라면, 스마트스토어와 네이버쇼핑을 합친 커머스 부문의 몸값은 10조원 수준밖에 안 됩니다.
네이버와 쿠팡의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그럼 이제는 오히려 네이버 커머스가 인정받고 있는 20조원 수준의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증권업계는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 부문에 거래금액의 1~1.5배 수준의 밸류에이션이 적정하다고 분석하고 있거든요. 투자자들은 왜 네이버에 경쟁 이커머스 업체들보다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는 걸까요?
최근 네이버가 손잡은 기업들 명단을 보면서 쿠팡과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CJ 그룹과 지분을 맞교환해 ‘혈맹’을 맺었는데요, 쿠팡 대비 열위였던 물류 역량을 보완해 ‘지정일 배송’이나 ‘오늘 도착’ 등 배송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강점인 풀필먼트(판매자의 배송, 포장, 재고관리 대행) 서비스도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이륜차 물류 인프라도 묵묵히 확장해 왔습니다. 네이버는 배달대행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의 최대주주고, ‘생각대로’의 지분 10% 이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배달의민족 우아한형제들에도 투자해 왔습니다. 이밖에도, 최근들어 이마트와의 지분 교환 얘기도 나오고 있네요.
소비자들이 느끼는 쿠팡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배송입니다. 근데 네이버가 쿠팡처럼 자체적으로 창고와 배송 인력을 확보하지는 않더라도 지분 투자와 대기업과의 협력으로 간극을 메운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느낄 차이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쿠팡이 인정받는 ‘거래액 3배’ 몸값과 네이버가 인정받는 ‘거래액 0.6배’ 몸값의 차이도 좁혀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네이버가 쿠팡의 3분의1 수준의 멀티플만 인정 받더라도 네이버 주가는 지금보다 30% 이상 오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