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총 266게임 판정 책임지는 심판들도 마라톤 같은 강행군
연극배우 출신 여류 당구인의 ‘이도류’ 인생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지인들이 ‘영화 올드보이 찍는구나’ 그래요.”
단일 당구 대회로서는 최장 기간인 18일간 달려온 ‘월드 3쿠션 그랑프리 2021’도 18일 결승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동안 수많은 대회 스테프도 대회장인 원주 호텔인터불고원주에서 물밑에서 이 대회를 만들어 왔다. 선수들이 뛴 266개 경기에서 빠짐 없이 함께 했던 심판들도 이 대회의 성공적 진행을 이끈 숨은 조력자다.
대회 종료를 하루 앞둔 17일 만난 대한당구연맹(KBF) 공인심판 류은지(36) 씨도 이 대회 심판 중 한명이다. 류 씨는 “매일 주심으로만 2~3경기, 부심으로는 거의 전 경기 투입된 것 같다”며 “이렇게 타이트한 스케줄이다보니 하루이틀을 빼곤 호텔을 한시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아직도 올드보이 촬영하고 있니” 하고 안부를 묻는단다.
당구 심판 실무·필기 시험을 통과하고 2019년 7월 심판이 됐다. 짧은 경력이지만 2020-2021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서 200여 개 모든 경기를 전담한 세 명의 심판중 하나였고, 이번 대회에서도 황연주 KBF 심판부위원장, 장동석 심판과 함께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기량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류은지 심판은 원래 연극배우다. 고교시절 연극에 반해 진로를 틀고 2004년 상명대 연기과에 입학했다. 코미디언 방송인 박나래가 그의 동기라고. 졸업후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는 대표작 중 하나다.
그런 그가 당구에 눈을 돌린 것은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게 계기다. “연극배우들 공연 출연만으론 수입이 일정치 않아 대부분 부업이 있어요. 사촌 오빠가 동국대 근처에서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당구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배우란 격에 맞게 참한 외모와 매너로 “누나”를 찾아대는 대학생 단골이 늘어나자 사촌 오빠가 동업을 전격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중구 ‘패한 자는 카운터로’ 당구클럽은 그렇게 류 씨를 공동점주로 맞았다. 이어서 류 씨의 당구 열정은 당구 심판이란 분야로 확장됐다.
류 씨는 힘든 대회 심판으로서든 클럽 점주로서든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에도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다. 류 씨가 주심을 맡은 방송용 경기를 보노라면 늘 그의 방긋방긋한 눈웃음으로 초구가 시작된다. “무표정이 아닌 것은 안다”며 본인도 밝은 표정을 의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내비친다.
학창시절 “다람쥐”란 별명처럼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게 천성이란다. TV 중계 경기에서 선수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게, 눈에 띄지 않도록 잔잔하게 움직이는 것이 처음엔 어려웠다고. “류 심판은 계속 부산히 움직이며 남의 일까지 찾아서 떠안는 경우도 있더라”고 한 대회 관계자는 귀띰했다.
당국계에서 존경하는 선수는 딕 야스퍼스. 연습이나 경기를 지켜보면 ‘버리는 큐’가 없을 정도로 매사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국내 선수중엔 연습벌레인 김준태를 좋아하는 선수중 한명으로 꼽는다.
류 씨는 본업이었떤 연극도 마음속 꿈에서 놓지 않았다. 언젠가 연극 무대로 복귀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연극 무대에서 버티고 있는 친구들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다고 격려해준다고. 그는 “우선 당구에선 당구인들이 인정하는 심판이 되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류 씨의 ‘이도류’ 인생을 응원한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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