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생전 모습, 관련자료 공개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카자흐스탄에 묻힌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만에 15일 고국으로 돌아온다.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이를 기념, 8월 17일(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 자료기증 및 특별 강연회’를 개최하고, 홍 장군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 자료와 관련 자료들을 공개한다.
이번에 공개하는 영상자료는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을 담은 것으로,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재까지 유일한 자료이다.
원동민족혁명단체 대표해 개막식은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공산당(코민테른) 국제대회를 말한다. 이 대회는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세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워싱턴 회의에 맞서 국제공산당이 지휘한 원동의 식민지·반식민지 혁명자들의 대회로,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 등지에서 총 148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과 최진동(崔振東, 1882~1945) 장군을 비롯, 김규식(金奎植, 1881~1950)과 여운형(呂運亨, 1885~1947), 현순(玄楯, 1880~1968), 김원경(金元慶, 1898~1981), 권애라(權愛羅, 1897~1973)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아시아 식민지 대표들과 독립투쟁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해당 대회에 참석했다.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는 본래 1921년 11월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연기됐다가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이 영상자료에는 홍범도 장군 뿐만 아니라, 여운형 선생과 현순 목사, 김규식, 김원경, 권애라 선생 등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지난 2018년 7월 러시아 국립 사진·영상물 보관소에서 발굴하여 공개한 자료로,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기념하여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이 기증 영상자료는 올해 8월 15일 정식 개관한 독립기념관 MR독립영상관 내 4DX관에서 상영하며, 반 교수가 특별강연한다.
이와 함께 이번 행사에는 ‘홍범도 일지’와 ‘봉오동전투상보’, 1912년과 1922년에 촬영된 홍범도 사진 2점 등 독립기념관이 소장 중인 홍범도 장군 관련 자료 15점을 함께 소개한다.
홍범도 사진 두 점은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을 촬영한 사진이다. 촬영될 당시 홍범도 장군의 나이는 55세이다. 홍범도는 “1921년 12월 11일에 이르쿠츠크에서 떠나 모스크바에 당진하여 객정(여관, 모스크바 럭스 호텔)에서 개회식을 열고 전기를 이용해서 사진 찍고”라는 기록을 ‘홍범도 일지’에 기록했다.
사진 속 홍범도는 소비에트 러시아 적위군 군복을 입고 있으며, 허리춤에는 레닌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권총집에 넣고 잘 보이도록 우측 허리춤에 돌려놓은 모습이 확인된다. 사진 하단에는 홍범도의 이름을 러시아어(ХОН ПЕМ-ДО)로 기재해 둔 것이 확인된다.
해당 자료는 이인섭 선생의 외손주인 세르게이 솔로보치코브 선생이 201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홍범도 일지’는 홍범도 장군의 출생부터 무장항일투쟁, 중앙아시아에서 보낸 말년까지의 삶과 활동을 시간 순으로 기록한 자료이다. ‘일기’로 알려져 있지만, ‘일기’ 라기 보다는 자전적 ‘약전’에 가까운 자료이다. 홍범도의 독립운동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여러 필사본(김세일본, 이인섭본, 이함덕본) 가운데 연극‘홍범도’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작성했던 ‘홍범도 일지’ 원본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당 책임비서 김진이 고려극장 배우 이함덕에게 지시하여 1958년 4월 16일에 필사를 완료한 필사한 ‘이함덕본’이다. 한국에 처음‘홍범도 일지’의 존재를 알린 김세일본과 이인섭본은 이를 다시 옮겨 쓴 것이다.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는 고려인 작가 김세일(1912~2001) 선생이 199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이다.
‘봉오동전투상보’는 1920년 봉오동전투에 참가했던 일본군 장교 야스카와(安川) 소좌가 작성한 봉오동전투와 삼둔자전투에 대한 보고서이다. 해당 자료는 봉오동전투가 발생한 1920년 6월 7일에서 조선군사령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던 6월 19일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군의 입장에서 1920년 봉오동전투 당시 독립군과 일본군의 상태, 전투지역의 기후와 지형 정보, 전투의 진행 과정, 병참과 통신 수단, 전투에 대한 소견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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