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과 반지식, 부족중심주의, 권위주의, 혐오가 판치고 자유와 민주의 가치가 오염된 시대,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낙관적 미래를 찾기 어려운 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온 세계적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거 하버드대 교수가 돌아왔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시작으로 20년에 걸친 마음과 언어 연구에 이어 계몽 프로젝트를 시작한 그는 두 번째 책, ‘지금 다시 계몽(사이언스북스)’에서 이성과 과학, 휴머니즘을 내세운 21세기 계몽주의를 주창한다.

우선 그는 인류에 대한 암울한 전망에 맞서 세상이 나아지고 있음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준다. 평균수명의 증가, 유아사망률 감소, 의학의 진보, 기아와 극빈의 절대적 감소, 범죄 감소 등 건강과 지식, 안전, 평화, 행복 등이 모두 증가하고 있는 점은 진보가 실재하는 현상이라는 증표다.

저자는 최근 자주 거론되는 불평등과 관련, 과도한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빈곤 박멸이며, 이를 해결할 최우선 과제로 경제성장을, 그 다음으로 보편 기본 소득을 꼽는다. 소득불평등은 쇠퇴의 증거가 아니란 것이다. 또 하나 과대 평가된 것은 테러의 위협이다. 테러로 인한 사망자의 대부분은 내전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테러에 대한 두려움의 증가는 세계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18세기 계몽주의의 핵심이념, 이성과 과학, 휴머니즘이 이 시대에 왜 요구되는 걸까? 현대의 삶을 이루는 가치와 제도는 계몽주의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앎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는 자유, 민주 등 보편 가치를 중시하는 규범과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과학혁명으로 우리는 18세기에 알 수 없던 것들까지 알게 됐다. 즉 우주는 어떤 목적을 갖고 있지 않으며, 포식자, 병원균은 우리를 위협하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도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본성의 결함과 편향성,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인류가 그래왔듯 더 나은 제도와 기술개발을 통해 개선과 진보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메시지다. 다만 이는 이성과 과학, 휴머니즘을 붙들 때 가능하다.

핑거의 진보 개념은 단순하다. 죽음보다 삶이 더 낫고, 병보다 건강이 더 낫고, 궁핍보다 풍요가 더 낫고, 압제보다 자유가 더 낫고, 고통보다 행복이 더 낫고, 미신과 무지보다 지식이 더 낫다는 걸 우리는 안다. 이것이 진보라고 핑거는 강조한다.

그러나 진보는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경제 침체나 정치적 포퓰리즘 같은 게 진보를 가로막는다고 핑거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신뢰와 낙관적 전망을 견지한다. 기후변화같은 문제도 땅과 생물종을 보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저감시키고 탈탄소화하는 에너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생태주의를 신앙처럼 받들어선 안된다는 얘기다.

“자유 민주주의는 우리의 귀중한 성취이다.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거기에는 늘 이런저런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을 지르고 뼈와 재 속에서 새로운 것이 솟아나기를 바라기보다는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더 나은 길이다.”

각종 데이터와 인지과학자로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거 지음, 김한영 옮김/사이언스북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