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점토판 지도부터 인공지능까지

인류문명과 함께 해온 주요 지도 망라

세계와 주변환경에 대한 이해 담아내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서양지도 표준으로

중세엔 에덴동산도, 근대들어 삼각측량도입

근현대 전쟁 주제도 압권…전세 생생 재현

지도는 과거 이해와 미래 방향등 역할 강조

“인간의 추가 개입 없이도, 데이터가 수집되고 지도가 업데이트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나 같은 지도 제작자가 계속해서 세계사의 본질을 폭로하고 해석하고 우리 대부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지도의 역사’에서)
“인간의 추가 개입 없이도, 데이터가 수집되고 지도가 업데이트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나 같은 지도 제작자가 계속해서 세계사의 본질을 폭로하고 해석하고 우리 대부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지도의 역사’에서)

1861년 고고학자 호르무즈드 라삼은 당시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바그다드 서쪽에서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조각 하나를 발견한다. 약 4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점토판은 시파르라는 고대 도시가 있던 곳으로, 19세기가 끝날 무렵, 쐐기문자가 해독되면서 이 점토판의 중요성이 밝혀지게 된다. 바로 세계 최초의 지도다. 세계를 위에서 바라본 평면지도로 두 개의 동심원이 있고 사이에 소금바다, 즉 세계를 둘러싼 대양이 둘러싸고 있다. 소금바다 안 쪽에는 유프라테스 강을 나타내는 표상과 바빌론이라는 주석이 붙은 네모가 그려져 있고, 산, 늪지, 운하 등으로 표시된 기호, 주요 도시를 나타내는 동그라미들이 그려져 있다.

고대인들에게 지도는 자기 주변의 세계와 환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주요 도구였다. 지도제작자인 맬컴 스완스턴과 아들 알렉산더가 함께 작업한 ‘지도의 역사’(소소의책)는 지도를 통해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그려나간다.

그리스 시대 지도는 천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층 정교해진다. 그 중심에 헬레니즘 문화와 지식의 보고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장이었던 에라토스테네스는 1년 중 낮이 제일 긴 6월21일 정오에 태양이 나일강변에 위치한 시에네의 우물을 수직으로 비춘다는 보고서를 읽고 지구 둘레를 계산해내기에 이른다. 이를 측정하기 위한 자신의 수학적 연구를 토대로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220년 새로운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이 천체에 대한 관심을 통해 지도를 제작했다면, 로마는 실용적인 목적에 관심을 두었다. 군사 작전이나 여행, 교역, 식민지 개척 등 영토를 상호 연관된 전체로 인식하기 위해 일종의 표준 그리드를 도입·활용했다.

로마에 정복당한 폰토스 출신 스트라본은 친구인 이집트 장관 갈루스와 함께 이집트 여행을 떠나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다 돌아와 ‘지리지’를 집필한다. 당시 최고의 지리지식을 집대성한 것이다.

한 세기가 훨씬 지나 서기150년 경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프톨레마이오스가 기념비적인 대작 ‘지리학’을 펴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구할 수 있는 선대의 모든 연구를 종합·검토한 것으로 서양에서 향후 2000년간 지도 제작의 표준이 된다.

8권으로 구성된 ‘지리학’의 1권은 투영법을 이용해 지도 그리는 법을 설명하는 데 할애돼 있다. 또 도시, 항구, 농지 등의 국지적 요소를 지도에 표시하고, 서쪽 브리튼 제도로부터 인도까지 모두 8000여 곳을 위도와 경도에 따라 명시했다. 위선과 경선을 사용하고 천문 관측을 통해 장소의 위치를 명시한 최초의 지도다.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 남아있던 문헌은 전쟁 등으로 모두 소실됐는데, 그의 ‘지리학’은 사본으로 남아있다. 12세기 아랍어로 돼 있는 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사본은 1482년 울름 판본으로 출간, 베스트셀러가 된다.

‘기독교 지리학’이 지배하는 중세시대의 세계지도, 마파문디는 매우 다양하다. 약 1100점의 마파문디가 전해져 내려온다. 세계를 다섯개의 기후대로 구분한 지대형 지도, 땅덩어리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로 3분할하는 T-O 지도, 세계지도의 가장 유명한 표현양식인 그레이트 맵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헤리퍼드 마파문디다. 동쪽이 위로 가고 예루살렘이 중심이며 에덴동산이 가장자리에 있는 전형적인 중세 지도다. 세로 158cm, 가로 133cm 크기로 채색한 이 한 장의 지도에는 성서의 열다섯 가지 사건과 고대 신화의 다섯 장면, 420개 도시와 소도시, 사람과 동식물이 묘사돼 있다.이 지도는 헤리퍼드 성당의 성가대석 벽면에 전시돼 있었지만 난세에는 예배당 바닥 밑에 숨겨지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은닉됐다가 1946년 성당으로 돌아왔다.

저자는 기독교가 중심인 시대에 이슬람 세계에서 방대한 고전지식과 지리학이 학자들에 의해 보전된 데 주목한다. 그 중심에 이슬람 지도제작의 대표자 알 마수디가 있다.‘아랍의 헤로도투스’로 불리는 알 마수디는 아랍전통에 따라 남쪽이 위로 가게 놓고 세계를 그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지리 전통이 결합된 알 이드라시의 지도는 제작 이후 300년 가까이 정확성의 표준이 됐다.

대항해 시대, 바스코 다 가마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페르디난드 마젤란, 에르난 코르테스 등 탐험가들이 지도제작과 함께 경쟁적으로 신대륙 탐험과 향신료 등을 얻기 위한 무역항로 개척에 나선 과정을 저자는 객관적으로 그려낸다.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을 벌인 제국의 시대에 지도는 한 단계 진화한다. 영국은 인도 전역에 대삼각측량을 실시, 인도 아대륙 내 영토를 한 눈에 꿰뚫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압권은 저자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제작해온 주제도다. 멀게는 십자군의 이동경로를 그린 ‘십자군 아틀라스’로부터, 미국의 남북전쟁, 제1·2차 세계대전을 다룬 상세지도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프랑스를 몰아내기 위해 세운 슐리펜 계획, 솜 전투, 영국 함대가 99척의 독일 함대를 격퇴한 유틀란트 해전, 막강했던 독일군이 미군에 힘입은 연합군에게 서서히 후퇴하는 1918년 10월의 결정적 지도 등은 한 장으로 전세를 보여준다. 불과 20년 만에 다시 발생한 제 2차 세계대전의 바르샤바 작전, 미드웨이 전투, 오버로드 작전 등도 지도를 통해 생생히 볼 수 있다.

저자는 “시간이 흘러 지금의 우리는 이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역사를 들여다보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 또 반복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도를 그려왔다”고 말한다.

손바닥 안에 지도가 들어와 있는 디지털 시대지만 저자는 지도 제작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가리키는 데 특별한 구실을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의 세계인식을 보여주는 지도지만 50여년간 지도를 제작하고 100여 권의 각종 분야사와 역사상 가장 많은 주제도를 만들어낸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안목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prp.com

지도의 역사/ 맬컴 · 알렉산더 스완스턴 지음, 유나영 옮김/소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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