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업계 인수합병 분야 전문가

재계 빅딜마다 숨은 조력자로 호명

해외 법률전문지 ‘올해의 딜메이커’

“M&A도 사람이 하는 일 신뢰 필요

로펌의 미래, 양적 성장 여전히 중요

숨가쁘게 달려온 30여년 변호사생활

좋은 일·사람 많이 만나 감사한 인생”

김상곤 광장 대표변호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광장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
김상곤 광장 대표변호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광장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

김상곤(54·사법연수원 23기) 법무법인 광장 경영총괄대표 변호사는 로펌업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기업 인수합병(M&A) 분야 전문가다. 재계에 놀라움을 안긴 ‘빅딜’마다 김 변호사의 이름이 함께 등장한 것도 2000년대 이후론 흔한 일이 됐다. 해외 법률 전문지도 그를 ‘올해의 딜메이커(Deal Maker of the Year)’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광장의 전신인 한미합동법률사무소에 입사해 내년이면 변호사 30년차가 되는 그는 3월부터 경영총괄대표를 맡았다. “변호사로서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김 변호사를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IMF 구제금융 위기는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놨다. 사회, 경제 전반이 지각변동을 일으켰고 기업 생태계도 송두리째 바뀌었다. 역설적으로 기업 M&A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로펌의 자문 수요가 덩달아 늘어났고, 로펌들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M&A 업무라는 것이 기업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다보니 노동, 조세, 환경 등등 각 분야 전문 변호사들이 다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규모가 필요한 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던 한국의 법률사무소는 4~5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김 변호사가 처음 M&A 업무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IMF 사태가 벌어지고 국가적으로 추진됐던 제일은행 매각 건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IMF 약속에 맞추기 위해 제일은행을 1999년 12월 31일까지 매각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수인(뉴브리지캐피탈) 측의 협상시한에 시달리면서, 그 시한에 맞추기 위해 협상을 벌이다가 결국 합의에 성공했던 과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업간 M&A는 더욱 활발해졌다. 그만큼 김 변호사도 경험과 전문성이 쌓여갔다. 파트너 변호사가 되고서 처음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LG화학의 현대석유화학 인수 건을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 굵직한 M&A에는 김 변호사의 이름이 더 자주 나란히 호명됐다. 같은 날 공개된 두 건의 서로 다른 빅딜에 김 변호사가 모두 참여했던 사실은 이미 재계와 로펌업계에 널리 퍼진 일화다. 삼성이 한화와 빅딜을 한 이후 후속 작업으로 남은 석유화학 사업을 롯데에 넘기는 3조원 규모의 빅딜이 2015년 이뤄졌는데, 같은 날 불과 몇 시간 뒤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1조원 빅딜 소식이 전해졌다. 두 건 모두 김 변호사가 조력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함께 알려졌다. “두 가지 협상을 모두 참여하다 보니 일주일간은 잠도 못자고 정말 고생했습니다. 힘들었긴 했지만 두 빅딜이 보도되는 걸 보니 ‘큰일을 하는 데 같이 있었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더라고요.”

김 변호사는 “M&A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일도 열심히 해야 되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하고, 만나야 정보도 얻을 수가 있고 인간적인 관계에 신뢰가 형성이 돼야지만 또 정보를 공개할 수 있고 그래서 같이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흔히 변호사로서 문서만 보고 일하는 페이퍼 워크만 한다기보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직업군인이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냇가에서 물고기 잡는 걸 좋아하고,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 읽기를 즐기던 평범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 성적이 좋았지만 일찌감치 법조인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업보다 더 이른 경제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진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1986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어수선한 시대에 대학생활은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학교도 사회도 어수선하고, 대학생활을 배우기도 어려웠어요. 2년을 보내면서 이렇게 계속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신차리고 뭔가 정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그는 자연스럽게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해 1991년 33회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진로를 로펌 변호사로 설정한 건 연수원 때였다. “연수원 다닐 때 친한 선배를 만나서 들어보니 로펌이란 곳이 생활이 안정적이고, 선배들과 일하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기 전문분야를 가질 수 있겠더라고요. 로펌에 가서 전문가가 돼 보자고 생각하고 진로를 정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로펌은 지금처럼 대형화되기 전이어서 일종의 법률사무소 개념이었다. 지금 광장의 전신으로, 김 변호사가 입사했던 한미합동법률사무소를 비롯해 규모가 있는 법률사무소의 변호사가 30~40명 선이었다. 하지만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 협업을 통해 전문성을 쌓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며 광장과 함께 성장했다.

지난해 광장의 공동 대표가 된 김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광장의 경영총괄대표변호사로 구성원들의 승인을 받고 3월부터 새 임기를 시작했다. 신입 변호사로 입사한지 29년째, 광장을 총괄해 진두지휘하는 선장이 된 셈이다. 김 변호사는 “M&A는 종합예술이라고들 많이 표현한다”며 “로펌의 모든 역량이 결집되는 중요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인데, 이제는 저도 광장이라는 조직과 우리 구성원들이 어떻게 서로 경쟁력을 갖추고 좀 더 화목하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역할을 ‘플레잉코치’에 비유했다. 여전히 현역으로 그라운드에서 뛰지만, 후배들의 성장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게 플레잉 코치다. “제 자신의 업무 수행보단 광장 전체의 업무를 봐야하고 제가 잘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젊은 변호사들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 하는데, 클라이언트를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고 이들이 알려지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 변호사에게 로펌의 미래를 물으니 “제가 들어왔을 때 로펌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던 것처럼 지금도 아무도 가늠을 못하는데 도대체 로펌이 한국에서 얼마만큼 커질 거냐 하는 부분을 누구도 예상을 못한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로펌에 있는 주요 매니지먼트 하는 분들 만나서 의견 교환을 하면 다들 ‘언제 멈출지 모르겠지만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봐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업계에 발을 딛던 시대보다 비약적으로 대형화됐지만 로펌들마다 여전히 양적인 성장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로펌마다 각자의 전문성을 더 부각하고, 영역별 밸런스를 맞추는 질적 성장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각의 전문 팀들이 다른 경쟁 펌보다 우위에 설 수 있도록 질적 성장을 염두에 두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변호사로 30년 가까이 일하며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김 변호사는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동안 좋은 일에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과 일을 하면서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입니다. 변호사로서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대용·박상현 기자


dand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