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죽음 후에도, 죽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있었으므로, 삶은 비극이다. 비통한 것은 죽음이되, 죽은 자는 그 비통함을 알 수 없으니, 비극이란 살아남은 자가 살아냄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황정은의 신작 장편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하나의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치는 파장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가 죽었다. 죽은 이를 전력 다해, 삶을 통째로 바쳐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에게 남은 생은 오로지 완전한 소멸을 위한 것이다. 완전한 소멸을 위해, 살아남은 자는 삶을 방기한다. 죽은 자와, 죽은 자 때문에 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 그들로 인해 더 이상 사랑이 불가능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계속할 수 있을까? 삶을? 사랑을? 그 때의 삶과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소설의 제목은 비정한 삶이 던지는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다. 독자들은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문장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소설 속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과 사랑의 비극성과 지속성에 대한 서른 여덟살 여성 작가의 통찰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죽은 이는 남자, 남편이자 아버지다.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어 죽었다. “넷이서 행복해지자며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허망하게 갔다. 아내 ‘애자’와 열살배기 큰 딸 ‘소라’, 한살 터울의 여동생 ‘나나’만 세상에 남았다. 연애시절을 묻는 딸의 질문에 어머니 ‘애자’는 “어느 것 하나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끝없이, 끝없이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고 했고,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답했다. 몸이 되어 버린 이야기, 곧 전심전력의 사랑 끝의 허망한 죽음은 여인에게 오로지 소멸을 위해 소모하는 삶만을 남겨 두었다. ‘애자’는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란다”며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라고 딸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살아가려면 세계를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채우는 것이 좋다고 되뇌었다. 어머니는 삶을 끈을 놓고, 딸들을 온전히 방기하며 살았다.
이제 두 딸은 죽은 아버지와 연애하던 빛나던 시절의 어머니만큼의 나이가 됐다. 딸들은 아버지가 죽은 시점에 이미 어머니는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이미 죽었구나, 수십번 수백번은 죽어버렸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실상 죽은 상태가 돼 버린 어머니의 삶은 두 딸에게 모성과 결혼, 사랑에 대한 깊은 상처와 회의를 남겼다. 그 와중에 미혼인 나나가 임신을 한다. 첫 딸 소라는 겁이 난다. 싫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나는 아기는 낳기로 했지만, 뱃 속 아기 아빠와의 결혼은 어때도 상관없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뒤돌아서면 언제든 무심해질 수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그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나는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 속 화자는 연애시절의 어머니 나이가 된 두 딸이다. 임신과 결혼을 두고 자매가 갈등하고, 서로에 대해서, 어머니 애자에 대해서, 그리고 각자의 삶에 대해서 소라와 나나가 차례로 이야기한다. 세번째 화자는 ‘나기’라는 젊은 남자다. 두 자매의 어린 시절, 반으로 쪼깬 반지하방을 나눠 쓰던 옆집 오빠다. 오빠의 어머니 ‘순자’는 애자가 넋을 놓거나 집을 나가 밥도 찾아먹지 못하는 두 자매를 위해 도시락까지 챙겨줬고, 오빠는 두 소녀와 남매처럼 컸다. 애자는 알지만 어머니는 느낄 수 없었던 두 자매는 노점상을 하며 아들을 키우던 이웃 아주머니 순자의 따뜻한 도시락을 먹고 성장했고, 어린 시절 시장에서 객사한 아버지를 둔 나기는 동병상련의 두 자매에게 친오빠 이상의 존재가 됐다. 그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지독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의 화자로 돌아온, 임신한 나나는 “애쓰지마” “덧없어” “세상은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 애자의 말에 이렇게 화답한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계속된다”거나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 “계속해보겠습니다”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이 능동형의 문장은 죽음의드리워놓은 비극적 삶의 풍경에서 비관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 이른 ‘무의미’의 긍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경어체의 문장 속에 녹여낸 섬세한 감성, 낮은 목소리로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내는 필력, “계속보겠다”며 펼쳐내는 이야기의 응집력과 집중력이 이미 한 작가로서 확립한 독창적인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뚜렷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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