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청와대 이전 및 개방을 공약했다.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개방을 천명하고 대체지로 용산 국방부를 지목했다. 바야흐로 ‘용산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고려 태조왕건은 918년 철원에서 즉위한다. 919년 송악으로 천도하면서 개경(開京)시대를 연다. 평양에는 서경(西京)을 설치했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을 양경(兩京)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종 6년 987년 경주를 대도독부에서 경주유수(慶州留守), 즉 동경(東京)으로 승격하고 삼경(三京)시대를 연다. 신라 계승 의식을 더한 것이다. 문종 21년 정미년 1067년 양주를 남경유수관(南京留守官)으로 승격시킨다. 사경(四京)시대를 열어 나라를 두루 고르게 한다. 남경유수관이 지금 청와대 자리다. 삼한을 계승함으로써 온 나라를 두루 잘살게 할 길지다.

고려 말 부패한 관료에게 시달리던 백성들을 동정하고 그들의 지위를 높여주려는 치열한 개혁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조선 건국설계자 삼봉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지어 바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민본(民本) 구상을 밝힌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조선 건국을 설계한다. 태조 4년 1395년 한양에 법궁 ‘경복궁’을 완공한다.

세종 8년 1426년에는 경복궁 후원(後苑)을 조성한다. 오늘날 청와대 자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2년 조선으로 쳐들어온다.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함락시킨다. 분노한 백성들은 선조가 버리고 떠난 경복궁을 불태운다. 아들 고종을 왕위에 앉힌 흥선대원군은 1865년 경복궁을 다시 세운다. 후원도 다시 짓고 ‘북원(北苑)’이라 했다. 북원에 경무대(景武臺)를 세우고 과거를 치러 인재를 등용한다. 그렇지만 전통사회 조선을 근대사회로 다시 세우지는 못했다.

일제는 이 틈을 비집고 조선을 강점한다. 경복궁 후원에 총독 관저를 짓는다. 총독은 경복궁을 상감(上監)한다. 경복궁 맨 앞에 조선총독부를 짓는다. 일제 관료들은 경복궁을 가리고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끊었다.

1945년 임시정부가 돌아온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총독 관저를 ‘경무대(景武臺)’라 고쳐 부르고 집무를 시작한다. 대통령 집무실로는 부적합한 이름이다. 1960년 4·19혁명 뒤 취임한 윤보선 대통령은 ‘청와대(靑瓦臺)’라 부른다. 고려 황궁 양이정을 청자기와로 이었던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제대로 된 이름이다. 그러나 청자기와는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를 새로 지었다. 1991년 9월 2층 본관과 단층 별채 2개동을 배치하고 청자기와로 이었다. 청자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만든 청자기와는 비취색이다. 청와대 청자기와는 그냥 청색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했다. 그 뒤로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청와대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 첫 민선 민간정부 수반이 된 김영삼 대통령은 통제를 풀었다.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등산로도 개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에도 청와대 경내를 개방하고 북악산도 개방했다. 군사정권과 함께 권위주의도 사라졌다.

일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군림했다. 국민과 소통을 가리고 끊었다. 식민과 군림의 능멸을 걷어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을 위한 폐쇄공간에서 국민을 위한 열린공간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청와대 이전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기를, 소통하고 화합하는 새시대를 열기를 기원한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


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