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존 레논은 ‘러브(Love)’라는 곡에서 ‘러브 이즈 터치(Love is touch)’라고 노래했다. 발레를 통해 10년간 오해와 불신을 쌓아온 평범한 부부를 비롯 장애우, 노숙인, 미혼모 등 소외계층의 아픔을 치유해온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은 “발레는 터치”라고 말했다.
음악이나 미술을 통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때는 혼자 듣고, 혼자 그리고 감상한다. 하지만 발레는 혼자서 할 수 없다. 거울 앞에 선 나를 바라보고, 동작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쳐다보며, 옆에 있는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한다.
김 단장은 “발레를 하면 사람 냄새를 맡으며 온몸에 자극을 받기 때문에 음악이나 미술보다 치유의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김 단장은 지난 19년 동안 단한번도 1년 예산을 미리 확보한 적 없이 애면글면 민간 발레단을 이끌어왔다. 그런 와중에도 장애우, 노숙인을 위한 발레 수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머나먼 콜롬비아에 가서도 매춘, 마약에 노출된 어린이들과 경찰들에게 발레를 가르쳤다.
“우리 발레단이 아무리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가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200% 확신합니다”
▶발레로 상처를 치료=지난 8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에서 장애우와 비장애우 어린이 35명으로 구성된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의 공연이 열렸다. 작은 실수도 있었지만 즐거운 얼굴로 최선을 다한 어린 무용수들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서울발레시어터와 보건복지부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다.
“장애우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것뿐만아니라 비장애우들이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예요. 첫 수업날에는 비장애우 어린이들이 장애우들의 손을 덥석 못 잡고 피했는데 같이 발레를 하면서 변하는 것을 보면 너무 신기해요. 어떤 장애우는 자폐가 심해서 수업시간에 30분 내내 악을 질러대기도 했는데 비장애우 어린이들이 그걸 참아내더라구요. 어른도 참기 힘든데 말이예요”
서울발레시어터는 노숙인들에게도 발레를 가르치고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매년 단원들은 소외계층 아이들과 캠프도 떠난다.
“처음에 단원들도 이해를 못 했죠. 발레하러 발레단에 들어왔는데 왜 이런 일을 시키냐구요. 하지만 발레를 통해 다른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단원들도 놀라요. 무대에서 춤을 출 때 깊이도 더 생깁니다.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과 비교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초라해도 단원들의 자긍심은 높아요”
지난 8~10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부부들을 대상으로 운영했던 ‘부부발레교실’도 반응이 뜨거웠다.
“10년 묵은 오해와 불신을 부부발레를 통해 털어낸 부부가 있어요. 저희가 발레를 가르쳐드리면서 일부러 ‘눈을 마주 보세요’라는 식으로 강요를 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스트레칭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터치하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되셨죠. 부부발레는 이혼율을 낮추는 역할도 합니다”
1999년 서울발레시어터의 ‘현존(BEING)’ 공연을 보러 왔던 한 관객은 무용수들을 찾아와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공연을 보고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백조의 호수’만 발레가 아니다=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등을 지냈던 김 단장은 지난 1995년 남편인 제임스 전과 함께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했다. 김 단장의 나이가 만으로 서른살 때였다.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무대에 올라서 기립박수를 받아도 집에 돌아가면 허무했어요. 계속 외국 안무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해오다보니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내 몸에 맞는 작품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1년만에 국립발레단을 박차고 나왔죠”
김 단장 부부는 그간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벌어놓은 돈을 통해 꿈꿔왔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다. 김 단장이 발레단의 경영을 맡고,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안무를 담당했다. 1996년 창작 발레 ‘손수건을 준비하세요’는 대학로 두레극장에서 40회 공연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00년에는 예술의전당으로부터 입주 제안까지 받았다.
“예술의전당에 들어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될 것이라며 흥분했었죠. 이삿짐까지 다 옮겼는데 갑자기 국립극장에 있던 국립발레단이 예술의전당으로 들어오게 된 거예요. 주요 수입원이었던 교습소까지 다 정리했는데…. 서울발레시어터를 10년 뒤로 퇴보하게 한 안타까운 일이었죠”
서울발레시어터는 원래 입주하려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층 대신 3층에 부랴부랴 연습실을 마련했다. 그러다 2002년 과천 시민문화회관으로 옮겨 지금까지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저희 집이 부유하거나 매년 들어오는 후원금이 있었더라면 중간에 힘들었을 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성들여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듯 어렵게 버텨왔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렵게 얻은 것은 쉽게 놓지 못하잖아요”
김 단장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의 정기적인 후원없이 서울발레시어터를 이끌며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국내 3대 발레단으로 성장시켰다. 유니버설발레단을 제외하면 단원들에게 월급과 4대보험 혜택을 주는 유일한 민간 발레단이기도 하다. 2001년에는 국내 최초로 ‘생명의 선’이라는 창작 발레를 미국 네바다발레단에 수출하기도 했다.
“조류독감, 사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덜덜 떨었어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연장 같은 곳을 피해야 한다고 뉴스에 나오면 심장이 쿵쾅쿵쾅하죠. 그동안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올해가 제일 힘들었어요.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상반기 공연이 전부 취소돼 지난 8월까지 수입이 전혀 없었거든요. 단원들한테 월급을 줘야 하는데 은행을 털 수도 없고….”
▶노점상하며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김 단장은 40여명의 단원들과 직원들을 돌보는 살림꾼 역할을 하느라 바쁘지만 지금도 춤을 추고 싶고 무대가 그립다고 한다. 누군가 발레단 운영을 맡아줄테니 춤을 추라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춤에 대한 열정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학교 운동회 때 친구가 부채춤을 추는 것을 보고 춤에 빠져들었다.
“제가 모나코왕립발레학교를 나와 발레단 단장을 하고 있다고 하면 ‘좀 사는 집 딸이겠거니’ 하실거예요. 실향민이었던 저희 어머니는 화양시장 노점에서 이북식 녹두빈대떡을 파시면서 저를 뒷바라지해주셨어요. 학원비가 없어서 친구가 한국무용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구경만 하다가 6학년이 되서야 저도 학원에 다닐 수 있었죠”
한국무용에서 발레로 전공을 바꾼 것은 선화예술중학교 1학년 때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에드리언 델라스가 키가 크고 늘씬했던 김 단장에게 발레반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김 단장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쳤던 윤희준 선생도 대학에 가려면 발레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과는 중1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다.
“1976년에 영국 로열발레단이 내한 공연을 했는데 가난하니까 티켓을 살 수 없었죠. 아는 사람을 통해 세종문화회관 음향실에 들어가 서서 공연을 봤어요. 음향실에서 봐도 가슴이 벌렁벌렁했죠”
김 단장은 선화예고 2학년 때 모나코왕립발레단에 유학을 갔다 귀국해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같은 발레단 단원이었던 제임스 전과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에서 앞자리에 외국으로 입양되는 한국 아기들이 타고 있는 거예요. 그중에 한 남자아이가 저만 보면서 계속 울길래 안아줬더니 울음을 그치더라구요. 제가 당시 긴 생머리였는데 그동안 자기를 돌봐줬던 사람이랑 비슷해 보였나 봐요. 너무 슬퍼하면서 나중에 우리가 가진 재능을 부모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쓰자고 남편과 약속을 했죠”
▶발레, 알고보면 야구처럼 재밌다=김 단장 부부는 25년전 신혼여행길에서 막연히 했던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다. 김 단장은 소외 계층에게 발레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발레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발레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카이스트 최고경영자(CEO) 과정 출신 모임에도 단원들과 함께 가서 발레 동작들을 소개하고, 지난 20일 영화 ‘모던발레 채플린’이 시작하기 전 메가박스 극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발레감상법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발레볼레’라는 강의를 하고 있어요. 발레가 졸립고 지루한 이유부터 설명을 드리죠. 발레에 나오는 손짓들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면 청중들이 너무 재미있어해요. 야구도 게임의 룰을 모르면 진짜 재미없잖아요. 어떻게하면 사람들한테 발레를 알릴까 고민해오면서 쌓인 노하우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재산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20주년을 맞는 내년부터는 단장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후원, 자문 등의 역할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20년 전 저와 남편이 갖고 있었던 것처럼 무모할 정도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넘겨줘야죠. 그렇게 고생해서 끌고 온 발레단을 왜 남에게 주려고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 제 소유의 발레단이라고 생각했다면 발레단 이름을 애초에 김인희ㆍ제임스전발레단이라고 지었겠죠. 40년, 60년 더 이어가기 위해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예요”
김 단장은 발레단을 후배에게 떠넘기고 도망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단장이 발레단 운영비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나서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김 단장은 지난 2005년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이후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아직 발레리나로서 공식 은퇴식도 하지 않았다.
“내년 20주년 기념 무대에서 은퇴식 겸 그동안 저희를 지켜봐 주신 분들에 대해 인사할 방법을 구상 중이예요. 앞으로도 소외계층이나 발레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발레를 통해 기뻐하고 건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간단한 발레 체조만 해도 관절에 비타민 주사를 맞은 것처럼 뻐근함이 사라지게 될 거예요. 집이나 사무실에서 잠깐씩이라도 꼭 해보세요”
김 단장은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환한 미소와 함께 발레 전도를 잊지 않았다.
ssj@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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