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혐의 대체적 소명…상당한 증거 확보”

“추가수사 불가피, 참고인 회유 가능성 희박”

영장 기각 불구 사실상 혐의 소명 판단

환경부 사건도 영장 기각됐지만 유죄 확정

문재인 정부 청와대 수사 확대 불가피

문재인 정부 초기 산업부 산하 발전 공기업 기관장 등의 사퇴를 강요한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정부 초기 산업부 산하 발전 공기업 기관장 등의 사퇴를 강요한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이전 정권 성향의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구속을 면했다. 법원은 백 전 장관의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추가 수사가 불피하고 관련 증거가 다수 확보됐다는 점을 강조해 사실상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동부지법 신용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5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청구된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백 전 장관은 2017년 산업부 산하 13곳 공공기관장에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고, 후임 기관장 임명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례적 영장 기각사유…“추가 수사 불가피…객관적 증거 확보”

백운규 전 장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퓨전테크놀로지센터 사무실 앞에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난 뒤 건물을 나서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백운규 전 장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퓨전테크놀로지센터 사무실 앞에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난 뒤 건물을 나서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신 부장판사는 먼저 “범죄혐의에 대한 대체적인 소명은 이뤄졌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고, 백 전 장관이 월성 원전 경제성 부당 평가에 개입한 혐의로 별도 재판을 받고 있어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덧붙였다. 백 전 장관이 참고인을 회유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봤다.

하지만 다른 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백 전 장관이 기소되면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지점이 보인다. 신 부장판사는 “수사기관에 상당한 양의 객관적 증거가 확보돼 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백 전 장관이 추가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적다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신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에 대한 추가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못박았다. 통상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히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백 전 장관은 일단 구속을 면했지만 향후 재판에서는 상당히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됐던 김은경 전 장관도 영장심사 단계에선 구속을 면했지만,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았다.

앞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9년 1월 백 전 장관, 이인호 전 차관, 박모 전 에너지산업정책관 등 산업부 공무원 5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한국당 측은 산업부 산하 발전사 사장들이 2017년 9월 2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박 전 정책관을 만나 사표 제출을 종용받았다고 주장했다. 사표 제출을 요구받은 발전사 사장들은 실제로 며칠 뒤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은 산업부 산하 발전사 사장과 그 외 공기업 기관장들에 대해서도 사퇴를 강요했다고 보고 구속영장 청구서에 반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도에 사표를 제출한 기관장들의 잔여 임기는 최소 6개월 이상 남아 있었다.

영장 재청구는 고심해야… 수사 확대는 기정사실화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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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 사유가 사실상 혐의 내용 상당 부분을 인정하고, 증거가 확보돼 있다는 내용이어서 검찰은 오히려 구속영장 재청구를 고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면 보강수사를 이어간 뒤 영장을 재청구하겠지만,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준 상태에서 백 전 장관이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에 재청구할 여지가 오히려 적다.

따라서 백 전 장관을 추가로 불러 조사한 뒤 불구속 기소하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수석실 관계자들로 수사를 확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을 수사 중이다. 박 의원은 2017년 청와대 대통령인사수석실 행정관으로 재직했다.

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청와대의 조직적 개입 정황을 판결문에 명시했다. 김은경 전 장관과 함께 기소된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은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지위에 비춰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점 등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사실상 ‘윗선’이 따로 있다는 판단이다.


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