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고민은 변하지 않았다' 10년 전인 2004년, 본지는 당시 피처폰 게임 시장에 대한 현안 분석과 이후 시장을 전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당시 분석 기사를 보면 피처폰 시장의 구조와 시장 흐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스마트 모바일게임 시장과는 플랫폼 등의 상당부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시장의 흐름과 문제점들은 지금과 꽤 비슷했다. 당시, 모바일게임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유일한 플랫폼인 이동통신사 중심의 유통 구조였다. 유통사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될수록 그 안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플랫폼 구조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매출 순위의 일방적인 선정이나 파트너사 중심의 게임 공급 등이 문제로 불거졌다. 특히, 2003년 모바일게임이 온라인 다음의 주류게임으로 부상하면서 다수의 게임업체가 난립, 급격한 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그만큼 빠르게 시장 포화에 이르게 됐고, 모바일게임 광고가 공중파TV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이통사가 가진 유저풀의 한계와 데이터 사용량 부족, 신규 모바일게임의 보급 저하, 망개방과 통합플랫폼 위피의 등장이 늦어지면서 시장의 포화는 가속화됐다. 유저층 확대가 둔화되는 한편, 한정된 시장에 다수의 개발사가 난립하는 형국이 벌이지고 있었다. 제한된 시장 안에 400여개 개발사가 난립한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대형 업체였던 컴투스는 100억원 대의 매출을 올리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2003년 초기, '붕어빵 타이쿤' 등의 대박에 힘입어 타이쿤류와 액션게임이 주류를 이루던 시장이 점차 RPG 중심의 대작화 현상을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PC와 온라인게임 히트작인 창세기전,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 라그하임 등의 모바일게임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미르의 전설'의 경우 일부 레벨업과 아이템을 온라인게임과 연동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명작 캐주얼 게임들의 시리즈화가 지속됐다. 사회 문화적 콘텐츠의 모바일화도 눈에 띄었는데, 로또, 포장마차 등과 기존 보드게임이던 부루마불의 네트워크 게임까지 등장하게 됐다. 모바일 업계의 기조는 역시 대작화와 3D화였다. 게임의 개발비용과 기간이 상승하는 한편, 마케팅에 대한 지원도 감소하고 있었으며, 억대 개발비가 투입된 대작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트워크 게임은 통신비 부담으로 절망을 맛봐야했다. 이런 대작화와 국내 시장 포화를 통해 해외시장 진출이 활발해졌다. 컴투스, 게임빌, 웹이엔지코리아 등은 중국, 동남아, 유럽, 북미 등에 주요 해외업체와 협력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해외 실적이나 이렇다 할 성공은 많지는 않았다. 특히 현지 모바일게임 업계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시장도 결국 성장세 둔화와 신규 업체 난립 등으로 기존 업체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었으며, 게임의 대작화와 마케팅비 상승 및 지원 감소라는 국내 시장 환경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는 결국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니즈와 해외 진출이라는 시도로 표출됐다. 그러나 해외 시장 진출은 현지의 벽에 가로 막혔다. 지금의 모바일 시장과는 매우 상이한 듯 보인다. 오픈 플랫폼 구조나 통신망 기기의 스펙 등. 그러나 게임의 대작화와 해외시장 진출 니즈에 비해 미미한 시장 성과 등은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이 해법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의 모바일게임 시장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힘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외산 게임의 국내 진출과 순위 점령, 해외 자본의 난입, 마케팅비 상승 및 해외시장 진출의 장벽 등 우리는 더욱 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는 모바일게임의 성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선도 함께 존재한다. 이 시장의 선점을 위해 우리는 더욱 치열한 시기를 지나게 될 것이다. 10년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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