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예술단 중심 제작극장 변화 선언
변화를 넘어선 혁신적 시도 ‘눈길’
“우리만의 작품 만드는 것에 사활”
새 콘텐츠 맞는 하드웨어도 재정비
클래식홀 건립 등 리모델링 구체화
올 시즌제 성공…‘세종의 힘’ 확인
한국고유 작품으로 세계 두드릴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먼저 따라왔다. 다수가 ‘변화’를 말했지만, 언제나 ‘벽’은 높았다. 정상을 향해가는 길은 멀고 험했기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술의전당부터 국립극장까지, 40년 가까이 극장에서 보내온 ‘극장 전문가’라 해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제게 늘 궁금한 곳이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극장이고, 우리나라 공연의 역사가 켜켜이 누적돼 쌓인 곳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44년의 역사를 품고 선 극장. 굳건하게 세워진 석조 건물엔 지워지지 않는 전통성과 상징성이 새겨졌다. 역사에 갇혀 보수성이 짙어진 극장엔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오갔다. ‘역사의 무게’를 딛고 꿈틀거리던 변화의 조짐들은 올 한 해 터져나왔다. 오랜 역사를 품은 극장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진화의 해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취임, 어느덧 일년여의 시간을 보낸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아직은 숨고르기 중이다. 세종도 차차 변화의 길로 나서고 있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취임 이후 무엇보다 세종문화회관의 현재를 냉정히 바라봤다. 고질적 문제를 살폈고, ‘위기의 극장’을 구할 강점과 기회요인을 파악했다. 오랜 역사만큼 구(舊)체제와 새로운 체제가 끊임없이 충돌했으나, 안 사장은 “세종의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봤다.
“새로운 길은 늘 불안하고 불확실하기에 주저함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세종문화회관이 공공극장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했어요. 시대에 맞는 역할을 찾아야 지금보다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존재감과 예술적 실력, 우리의 지분을 제대로 인정받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올 한 해의 세종은 혁신에 가까운 시도가 이어졌다. 체질 개선을 위해 ▷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 ▷ 재정비된 하드웨어 구축을 천명했다. 변화는 도처에서 포착됐다. 유명무실했던 세종문화회관 산하 6개 예술단(국악관현악, 무용, 뮤지컬, 연극, 오페라, 합창)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극장 리모델링도 본격적인 첫 삽을 뜨게 됐다. 개관 50주년인 2028년을 목표로 한 개축이다. 안 사장은 “극장이 변화하기 위해선 좋은 콘텐츠와 함께 그것에 맞는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전한 도약을 위한 첫 걸을 딛는 데에 ‘극장 리모델링’도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일련의 변화로 세종문화회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역사성에 갇혀 ‘낡고 보수적’이라는 인식도 적잖았던 세종문화회관은 새로운 시즌들을 통해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대중 곁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다만 지난 1년 사이 세종문화회관 내부에선 사건 사고도 적지 않았다. 안 사장은 “세종의 오래된 모순들이 나오고 있지만, 곪은 것은 터져야 한다”며 “새롭게 태어나려는 변화를 위한 진통”이라고 봤다. 고름을 짜내고 본격적인 항해를 떠난 안호상 사장에게 지난 1년의 변화와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물었다.
▶ 세종문화회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우리나라 예술계 내에서 시민들의 예술적 요구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향한 시대적 요구와 수요가 있는데, 한꺼번에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을 둘러싼 극장 환경의 변화로 인해 다양한 시대적 책임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 취임 이후 세종문화회관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나아가며 보여준 콘텐츠의 변화와 오랜 숙원이었던 극장 리노베이션 계획이 확정된 점이 고무적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산하 예술단체 9개 중 성인 단체가 6개나 있는 극장이다. 해마다 이 단체에 들어가는 인력이 60% 가까이 되는데, 예술단에 대한 인지도와 평가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세종문화회관이 지속가능한 변화를 하기 위해선 예술단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껴안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곳이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체다. 이들에게 ‘예술가로의 본능’을 깨워주면 우리나라 최고의 단체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봤다. 이들이 우리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이제는 공공극장의 예술단체가 역할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 민간 단체가 예술시장에서 차지했던 위상이나 역할의 비중이 점차 줄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가져온 예술작품과 예술단체들이 과거에 받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선 이전처럼 신작 활동이 활발하지 않고, 예술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그 흐름은 아시아로 넘어와 전 세계에서 한국의 콘텐츠를 바라보는 때가 됐다. 우리 관객들 역시 ‘우리 것을 원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 우리가 생산하고, 우리가 창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게다가 과거 20~30년 전에 비해 지금의 관객은 요구와 취향이 더 다양해졌다. 예술기관이 할 수 있는 역할 역시 그만큼 다양해졌기에, 안 된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고 봤다. 공공극장인 만큼 책임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개발할 수 있고, 신인을 발굴하며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없는 역할을 제대로 하면 세종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지리라 봤다.
▶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추진한 일은 무엇인가요?
= 인재 등용이다. 전문성을 갖춘 예술감독의 영입에 집중했다. ▷ 단체 운영 경험▷ 단체와 동일한 비전 ▷ 이 시대 관객들의 요구에 대한 이해 ▷ 단원들과의 소통 ▷ 기획자로의 감각을 갖춘 사람을 찾기 위해 주력했고, 적임자들을 영입했다. 예술감독을 주축으로,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향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은 예술단의 공연 횟수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지난 봄 시즌 90%의 작품을 산하 예술단이 맡았다. 예술단의 작품 숫자가 늘고, 관객과 많이 만나야 충성 관객도 생기기 때문이다.
▶ 올 한 해 세종문화회관의 시즌제가 관객과 공연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내부에선 이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 예술기관이 작품으로 주목받고,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봄 시즌부터 여름 시즌인 ‘싱크 넥스트’ 등을 이어오며 티켓 가격 문제, 공연 횟수 등 기획적인 실책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성공적이라고 보고 있다.
새로운 시즌들을 기획하며 동시대성을 띈 이 시대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것에 중점을 뒀다. 예술은 신선하고 새롭고 위험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누가 봐도 안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것과 위태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는 극장이라야 관객도 기대감과 호기심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했던 위태로운 선택이 기획공연으로 약 3개월간 이어진 ‘싱크 넥스트’였다. 시즌제에선 유료 관객 점유율이 평균 70%에 달했다. 매진은 물론 80~90%의 티켓 판매율을 기록한 작품도 상당수 나왔다. 3개월간 이어진 새 시즌제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둔 사례가 과거에 있었나 싶다.
예술단의 활동도 공연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충돌과 조화’, 서울시 무용단의 ‘일무’, 서울시합창단이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 세종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 한 두 편씩 늘어나면, 세종문화회관은 제 역할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봤다. 내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희망을 가지고 내년을 기다리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리모델링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2300석 규모의 대극장과 1800석 규모의 클래식 콘서트홀, 600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구성한 이번 리모델링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인가요?
= 세종문화회관의 건립 당시 지금과 같은 예술적 위상을 형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대극장의 존재였다. 세계적인 음악 공연이 세종문화회관에 오르며 예술적 상징성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적인 단체들이 다른 공연장으로 향해, 초기에 쌓아온 예술적 명예를 유지하는 데에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이번 리모델링으로 세종문화회관엔 강북 유일의 콘서트홀이 생길 뿐 아니라 모든 공연 장르를 수용하는 극장 구성을 갖추게 됐다. 세계 최고의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예술 공급 거점으로의 역할을 시작하는 발판이 된 것이다. 이 계획이 새로운 세종의 변화를 만드는 동력이 되리라 본다.
뿐만 아니라 취임 이후 세종문화회관 후원회를 새롭게 조직했다. 곧 새 집행부가 출범해 세종문화회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펀드레이징을 시작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 서울의 문화적 수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마음을 담아 건립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공공극장을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민간극장은 민간으로의 역할과 즐거움이 있고, 공공극장은 공공으로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극장이 해야할 일은 ‘새로움의 발굴’이다. 새로운 예술가가 나와야 새로운 관객이 생긴다.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해 새로운 작품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극장은 안정된 여건으로 모든 리스크를 안고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 세종문화회관의 미래는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 최근 유럽 출장에서 지난 10년 사이 달라진 한국 공연예술계의 위상을 체감했다. MZ(밀레니얼+Z) 세대는 물론 세계적인 예술 센터의 기관장들이 모두 방탄소년단과 K팝, ‘오징어게임’, 정재일(‘기생충’, ‘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을 이야기한다. 지금 이 시대에 예술기관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이고 영광인지 깊이 느끼고 있다. 이런 시기에 책임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세종문화회관의 직원들과 나누고 싶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서울시무용단은 미국 뉴욕 링컨 센터의 초청을 받아 내년 7월 공연을 앞두고 있다. 다양성의 시대인 만큼, 세종문화회관의 가능성도 더 커졌다. 이제는 전통에 기반한 한국 고유의 콘텐츠, 우리만의 작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눈앞에 왔고, 그래야 하는 때가 됐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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