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쓴 적이 있다. 전세금, 빚, 각종 비밀번호 등 숫자가 대부분이었던 짧은 메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2020년 2월 자택에서 또래인 40세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숨졌다는 보도를 접한 후였을 것이다. 유서는 예고 없는 죽음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자 대비였다. 그때 나는 죽음의 공포를 실제로 느꼈었다.
코로나가 확산되며 지인의 삼촌이, 친구의 조부모가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죽었다. 체감되는 공포는 커져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을 참는 사람, 집에서도 마스크를 낀 사람..., 농담 같은 얘기였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은 겪는다는 전쟁. 코로나는 우리에게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시에나 있을법한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다. 모임이 4명으로 제한됐고, 오후 9시를 넘겨 영업을 한 사람은 붙잡혔다. 조카의 돌잔치에 이모와 삼촌은 참석이 불허됐다. 황당한 일들을 그때 우리는 황제의 칙령처럼 받아들였다.
3년을 버텼다. 백신을 맞은 몸은 강해졌다. 바이러스의 위력도 약해졌다. 누적 확진자 수는 3000만명에 육박했다. 우리나라 인구 5174만명(2021년 기준)의 60% 가까이가 코로나를 경험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지만 일상은 유지됐고 경제는 회복됐다. 정부의 실내마스크 의무 해제계획이 20일 발표되면 우리가 경험하는 코로나는 사실상 끝이다.
인류의 노력이 이를 가능케 했다. 개발에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백신은 1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언택트(untact)’기술이 발전했다. 전쟁 중에 레이더, 컴퓨터, 인터넷이 개발된 것처럼 죽음의 공포와 맞서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이뤄냈다. MS 최고경영자인 샤티야 나델라는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4월 “2년치의 디지털 전환이 단 2개월 만에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스마트폰 속의 나의 짧은 유서는 지워진 지 오래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이제 사라졌다. 생존을 위한 인류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미래는 앞당겨졌다. 그리고 우리는 기술 진보에 따른 위대한 유산을 갖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재택근무는 지난 3년간 혁신의 집약이었다. 상사와 대면하지 않아도 업무는 잘 굴러갔다.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는 기업(카카오 등 ICT기업)도 있었다. 직원들은 능률이 올랐다며 ‘재택예찬가(歌)’를 불렀다. 기업 75.2%는 ‘생산성의 차이가 없다’며 코로나가 끝나도 재택근무를 계속 할 의향이 있다며 맞장구를 쳤다(한국노동연구원 2021년 12월). 생산성을 유지한 채 직원 삶의 질이 높아졌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보다. 죽음의 공포에 맞서 얻어낸 결과물로 계승해야 할 유산이다.
최근 이 움직임에 역행하는 집단들이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부 ICT기업이다. 혁신의 결과물인 재택근무를 줄이고 출근을 늘리려는 시도들이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반대로 방침을 거뒀다고 한다.
재택근무가 혁신의 결과라면, 이를 뒤집는 세력은 반동이다. MZ세대의 용어로 얘기해보자. 이 저항세력들은 ‘기분 거슬림’을 ‘업무의 비효율’로 가장한 꼰대일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진보는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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