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정성화ㆍ양준모

서로 다른 해석의 안중근 표현

‘강인한 의인’ vs ‘보편적 인간’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 흔한 ‘스타 배우’도, ‘아이돌 출신’ 배우도 없었다. 2009년 초연 이후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뮤지컬 ‘영웅’은 오직 ‘콘텐츠의 힘’으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왔다. [에이콤 제공]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 흔한 ‘스타 배우’도, ‘아이돌 출신’ 배우도 없었다. 2009년 초연 이후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뮤지컬 ‘영웅’은 오직 ‘콘텐츠의 힘’으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왔다. [에이콤 제공]

[영상=이건욱PD]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홉 번째 시즌으로, 14년을 이어오면서도 뮤지컬 ‘영웅’은 여전히 ‘전성기’다. 올해는 특히 영화와 동시 개막하며 대중적 관심이 더 커졌다.

뮤지컬 ‘영웅’은 ‘하얼빈 거사’를 이끄는 안중근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무대로 옮겼다. 아홉 번의 시즌을 이끄는 동안 ‘영웅’은 조금씩 진화를 거쳤다. ‘영웅’을 세상에 내놓은 윤호진 에이콤 예술감독은 “‘영웅’은 매번 진화해왔고, 이번 시즌에도 인물들의 관계나 무대 세트 등에 변화를 조금 줬다”며 “내년이면 15주년인데, ‘영웅’은 계속 진행형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이끄는 안중근은 ‘무대 위 주역’이다. 서른 넷이었던 초연(2009) 때부터 안중근을 연기해 어느덧 40대 후반이 된 정성화, 서른 살에 안중근을 시작해 40대 중반이 된 양준모는 무대 위로 안중근을 되살리며 서로 다른 감동을 전한다. 두 사람의 안중근이 너무도 다른 색과 해석을 보여주고 있어 더 흥미롭다.

‘결연한 애국지사’ 정성화의 안중근

14년간 안중근으로 살아온 배우 정성화는 결연하고 강인한 애국지사 안중근의 모습을 그린다. [에이콤 제공]
14년간 안중근으로 살아온 배우 정성화는 결연하고 강인한 애국지사 안중근의 모습을 그린다. [에이콤 제공]

배우 정성화는 ‘안중근의 상징’이다. 14년간 안중근으로 살아온 그의 얼굴과 눈빛은 안중근이 살아온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아홉 번의 시즌에서 여덟 번을 안중근으로 살아온 그는 현재 뮤지컬과 동시에 극장으로 간 영화 ‘영웅’에서도 안중근 역할을 맡았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진 정성화의 안중근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정성화의 안중근은 강인하다.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추진력 있게 나아가는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이 상상하는 안중근의 모습 그대로다. ‘결연한 애국지사’로의 모습이다.

최근 진행된 뮤지컬 ‘영웅’의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는 격랑의 시대에 나라와 정의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이 그런 안중근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것이 나의 책무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판단한 안중근을 “오해 없이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거쳤다. 지금의 안중근은 14년의 연구와 공부로 만들어진 모습인 셈이다.

무대(뮤지컬)와 스크린(영화)으로 소환된 안중근의 삶이 이른바 ‘쌍끌이’로 ‘영웅시대’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진은 영화 ‘영웅’[CJ ENM 제공]
무대(뮤지컬)와 스크린(영화)으로 소환된 안중근의 삶이 이른바 ‘쌍끌이’로 ‘영웅시대’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진은 영화 ‘영웅’[CJ ENM 제공]

객석과의 일정 거리로 인해 배우의 표정, 눈빛 변화 포착이 쉽지 않은 뮤지컬 무대와 달리 영화 ‘영웅’에선 클로즈업된 영상을 통해 섬세한 정성화의 연기를 만날 수 있다. 사실 영화 ‘영웅’의 안중근 역할을 맡을 배우를 두고 제작사와 투자자 사이에 갑론을박도 있었다. 윤 감독은 “당시 투자자들은 대형작품인 만큼 대중적인 배우가 맡기를 원했는데, 뮤지컬 영화의 주인공으로 소화할 만큼 노래를 잘하는 배우가 많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정성화로 주인공이 낙점되며 큰 산을 넘었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를 소화하기에 정성화 만한 배우가 없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영화를 위해 정성화는 무려 14kg이나 감량했다. 당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영웅의 8번째 시즌을 공연 중이었다. 그 시절 현미밥에 닭가슴살, 간장에 졸인 아롱사태를 먹고 매일 헬스장에 가 운동을 했다. 혼을 불사른 다이어트로 당시 공연에선 2막 마지막곡인 ‘장부가’를 부르며 혼절하기도 했다.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장부가’를 부를 때면 조금 걱정이 돼요.”

치열하게 감량한 영화 속 정성화는 안중근의 모습에 더 가까워졌다. 지방질이 완전히 빠진 체격과 퀭하고 깊어진 눈빛엔 독립운동가의 결기가 더 살아난다. 단단한 각오를 새기다가도, 거사를 앞둔 두려움을 비추고, 그 두려움을 결의로 다지는 눈빛은 안중근이 살아돌아온 것만 같다. 영화에선 특히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과 그 떨림 안에 담아낸 감정의 변화가 읽힌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려움에 대한 해석이다. 정성화가 그려내는 두려움은 나약한 인간의 두려움이 아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거사에 불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감정은 그러나 이내 불길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털어내고, 다시 독립의 의지를 다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감정의 변화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단단한 내면을 표현하려 한 점이 관객에겐 진중하고 신뢰감 높은 의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무대처럼 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해 뮤지컬 영화의 매력을 살렸다. “관객들에게 배우의 호흡을 고스란히 들려주기 위해서”다. 물론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정성화는 “노래를 잘하면 감정이 무너지고, 감정을 잘 잡으면 노래가 무너진다”며 “모든 노래를 14~15 테이크 정도 찍었고, ‘장부가’는 40번 넘게 불렀다”고 말했다. “가장 탈진한 신”이 영화에 실렸다. 반면 뮤지컬은 매일 반복되는 무대로 단련, 정제된 목소리와 또렷한 발성으로 더 섬세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인간적인, 양준모의 안중근

양준모는 2010년 뮤지컬 ‘영웅’의 재연 당시부터 안중근 의사를 만나 올해로 다섯 번째 안중근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에이콤 제공]
양준모는 2010년 뮤지컬 ‘영웅’의 재연 당시부터 안중근 의사를 만나 올해로 다섯 번째 안중근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에이콤 제공]

참으로 인간적이다. 일명 ’양중근‘(양준모+안중근)은 ‘고뇌하는 독립투사’다.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온몸으로 맞닥뜨린다. 감정의 낙차는 극적인 서사를 살리고,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양준모의 안중근이다. 양준모는 2010년 뮤지컬 ‘영웅’의 재연 당시부터 안중근 의사를 만나 올해로 다섯 번째 안중근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 10여년 양준모의 안중근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안중근 의사와 비슷한 나이였던 서른 살에 ‘영웅’을 시작한 양준모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처음 안중근 의사를 맡았을 때는, 쉽지 않은 경험을 하면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을 겪었을 안중근을 이해하려 노력했다”며 “지금은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의 길이’는 ‘양중근’의 깊이를 더했다. 익히 알려진 독립투사 안중근의 모습에서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삶을 살았을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양준모의 방향이었다. 그가 그려내는 안중근은 ‘타고난 독립투사’의 모습을 한 특출난 위인이라기 보다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깊은 고민과 아픔을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거사를 치르기 위해 많이 울고 힘들고 (가족을) 그리워했을 안중근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 흔한 ‘스타 배우’도, ‘아이돌 출신’ 배우도 없었다. 2009년 초연 이후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뮤지컬 ‘영웅’은 오직 ‘콘텐츠의 힘’으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왔다. [에이콤 제공]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 흔한 ‘스타 배우’도, ‘아이돌 출신’ 배우도 없었다. 2009년 초연 이후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뮤지컬 ‘영웅’은 오직 ‘콘텐츠의 힘’으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왔다. [에이콤 제공]

거사를 앞두고 양준모가 그리는 안중근의 마음 안에 시시각각 두려움과 불안이 피어오른다. 큰일을 함께 도모한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처절하게 아프고, 온 힘을 다해 슬퍼한다. 정성화의 안중근이 대본에 충실하며 슬픔을 그린다면, 양준모는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상황마다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양준모의 인간적인 안중근으로 인해 “내 앞에 놓인 선택 하나하나가 두렵기만 하다”는 대사도 큰 울림을 가지게 된다.

두려움이 밀물처럼 몰려들어도 끝끝내 이겨내 다시 설 때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강인하다. 두려움을 딛고 섰기에, 그의 결심은 굳은살이 돋아나 더 거침이 없다. 죽음을 앞두고 부르는 ‘장부가’에서도 인생의 마지막 앞에 선 한 사람의 두려움을 보여주다가, 마음을 다지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거대한 위인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매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객석을 더 뜨거운 조국애로 물들인다.

양준모는 안중근을 연기하며 바람도 생겼다. 그의 데뷔작은 가극 ‘금강’.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안 5주년 기념행사로 평양 무대에 올랐다.

“저의 데뷔 무대는 평양이었어요. 문화가 정치를 뛰어넘은 경험이었어요. ‘영웅’이 안중근 의사의 고향인 해주에서 공연하는 날을 상상해봅니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만큼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