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전의 창극화 ‘트로이의 여인들’
미국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에 초청
해학과 풍자의 미학 ‘변강쇠 점 찍고 옹녀’
100회 공연 금자탑…佛 테아트르에 초청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공연을 마치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회 공연 관람객은 무려 3400여 명. 지난해 미국 하워드 길만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 공연이다.
“공연 내내 숨죽여 집중하다가 3층까지 가득 찬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낼 때 전율을 느꼈어요. 국립창극단에 단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들더라고요.”
그리스 희곡을 창극으로 옮긴 ‘트로이의 여인들’ 美서 박수갈채
입단 8년 차가 된 국립창극단의 ‘간판’ 유태평양은 지난 공연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희곡을 창극으로 옮겨온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지난해 11월 브루클린음악원의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Next Wave Festival)’ 프로그램으로 초청됐다. 축제의 40여년 역사상 첫 창극 무대였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국립창극단 60여년 역사에 있어서도 특별한 작품이다. 국립창극단에 따르면 2016년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관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2016년 국립극장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 제작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작가 배삼식이 창극 극본을 썼고, 싱가포르 출신 세계적 연출가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명창 안숙선이 작창을,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음악을 만든 정재일이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서양 고전이면서 해외 연출가와의 협업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지원 국립창극단 책임 PD는 “‘트로이의 여인들’은 한국의 전통과 정신, 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옹켕센 연출가가 자신의 독특하고 엣지 있는 스타일을 잘 접목해냈다”며 “세계가 공유하는 고전이면서 우리의 형식을 입혀 해외 러브콜도 많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미국 공연에선 “동양 작품은 대체로 그들의 문화를 보여주는데 ‘트로이의 여인들’은 새로운 작품을 체험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만났다”는 평을 들었다. 아메리칸레퍼토리시어터 예술감독이자 뮤지컬 연출가인 다이앤 파울루스는 “그 어디서도 만난 적 없는 경이로운 작품”이라며 “창극만의 독창적이고 비범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
‘트로이의 여인들’에 출연한 국립창극단의 정미정 창악부장은 “이 작품은 서양의 작품에 작창과 작곡이 더해졌는데, 서양 악기를 따라가지 않고 우리의 소리는 소리대로 살려낸 수작이다”며 “이번 공연에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미국 관객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경이로웠다”고 말했다. 기악부 최영훈은 “해외 연출가와 작창가, 작곡가가 각자의 요구와 생각을 절충하며 만들고, 창극단 단원들이 찰떡같이 소화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변강쇠…’는 100회 공연 ‘금자탑’
‘트로이의 여인들’과 함께 톱2에 오른 작품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다. 2014년 초연한 작품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잃어버린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 타령’을 재창작, 외설로 치부되던 고전을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무대에 올렸다. 변강쇠가 아닌 옹녀가 주인공이 된 작품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미 2020년 100회 공연의 금자탑을 세운 이 작품은 공연 때마다 “관객들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작품”이라고 오 PD는 설명한다.
작품에서 옹녀는 ‘팔자가 드센 여자’라는 굴레를 벗고, 자신의 힘든 운명을 개척하며 사랑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당차게 살아간다. 완전히 달라진 옹녀의 캐릭터는 동시대성을 반영한다. 옹녀가 지닌 적극성·생활력·생명력은 지금 시대의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상이다. ‘변강쇠점 찍고 옹녀’는 창극 최초로 ‘차범석희곡상’ 뮤지컬 극본 부문을 수상했고, 2016년엔 유럽 현대공연의 중심이라 평가받는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 공식 초청됐다.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 극본·가사·연출을 맡았고, 국내 대표 작창가 한승석이 작창·작곡·음악감독으로 함께 했다.
오 PD는 “누구나 하고 싶지만, 담지 못한 이야기를 창극이라는 그릇을 통해 해학적으로, 외설적이지 않게 풀어낸 작품이다”라며 “모든 상황을 이해시키는 압축의 미, 희노애락을 담는 장단의 유희, 타악의 울림이 있어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섰다”고 봤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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