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日정부가 DJ-오부치 선언 계승하면 수용할 수도”

“日기업 책임 인정 안 해…정부 담화 계승으로 논의 중”

역대 정부도 ‘통렬한 사죄’ 계승했으나 과거사 부정해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미스비씨한테 사죄 받아야 옳다”

지난달 31일 오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해법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
지난달 31일 오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해법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측이 주장해온 일본 측의 사죄 방식으로 198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미스비씨한테 사죄를 받아야 옳다”는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요구와 대치되는 방안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 담화를 계승하는 방식이 공식적인 사죄로 볼 수 있을지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통절한 반성과 사과의 내용이 나와 있는데, (일본이) 그것을 포괄적으로 계승할 경우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일 정부가 해법안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이어가는 가운데 쟁점은 크게 피고기업의 배상금 기여와 사죄 여부다. 한국 정부는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과의 주체와 방식에 대해 박 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명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큰 틀에서 사과의 주체는 ‘일본 정부’, 방식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을 공식 발표하는 수순이다. 1998년 10월8일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이 선언의 공식 명칭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해 나가기 위한 양국의 5개 분야 협력 원칙이 담겨있다.

이 중 2항에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명기돼있다. 현 기시다 정부가 이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밝힌다면 오부치 총리의 사죄도 계승, 우회적인 방식으로 정부가 사죄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측의 태도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다. 4차례 열린 민관협의회에서는 피고기업의 직접 사죄가 가장 근본적이지만, 일본 정부가 직접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공신력이 있을 수 있다는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됐다. 피고기업이 배상금에 기여할 경우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한다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며 이를 피하려는 상황에서 직접 사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도 담겨있다.

박 장관은 "일본 관련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책임 자체를 인정 안 하고 있고 배상에 대해서도 책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반성 표명이 있어야 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서 그 이전에 했던 선언, 내용 중에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받아들이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 측에서는 피고기업의 직접 사죄를 명확하게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기업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자 양 할머니는 지난달 30일 “일본 사람이 무릎 꿇고 사죄를 해야 내가 받겠다”고 밝혔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도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일본 기업도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이것은 마지노석으로 더 이상 우리는 양보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었다.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에서 처음으로 담긴 ‘통렬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비롯해 2005년 고이즈미 담화, 2010년 간 나오토 담화, 심지어 2015년 아베 담화에도 계승돼왔지만 일본 정부가 과오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과거사를 부정해왔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당장에 일본은 최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나가타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재신청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